덩샤오핑은 1989년 톈안먼 사태와 1991년 옛 소련 해체의 대내외 위기 속에서 1992년 1월 남순강화를 결행해 전방위적 개혁·개방을 재점화시켰다. 절체절명의 갈림길에서 개혁·개방을 가속화하는 길을 택했던 중국의 지도자가 일찌감치 한국의 경제 발전 전략에 주목해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마침내 한중 양국은 1992년 8월 24일 수교에 이르렀다. 한중 수교는 스스로 ‘산둥의 노(盧) 씨 후예’라고 말한 노태우 대통령이 냉전이 종결되는 국제 환경 아래 일관되게 추진한 북방 정책의 최대 성과이기도 했다.
지난 30년간 한중 관계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루었다. 공동성명의 합의대로 한중 수교는 양국 국민의 이익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도 중요한 기여를 해왔다. 미중 관계의 안정과 한중 간 경제적 상호 보완성을 바탕으로 한국은 중국의 수입 시장에서 2013년 이래 7년간 1위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산둥성은 오랜 교류의 역사와 한중 간 교두보로서의 지리적 이점을 바탕으로 수교 이전부터 우리와 경제 교류가 매우 활발했다. 1990년 최초의 카페리로 인천-웨이하이 항로를 개설한 위동페리, 1989년 중국 진출 1호 한국 기업으로 제조 공장을 건설한 토프톤전자를 비롯해 칭다오·옌타이·웨이하이 등 동부 연안에는 한때 1만여 개의 크고 작은 기업이 활동했다.
그동안 세계 제2위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한 중국 경제 고도화를 거치면서 2008년 금융위기에 이어 최근 코로나19 영향으로 산둥성 내 우리 중소기업이 상당수 철수했다. 하지만 지금도 약 4400개의 투자 법인들을 중심으로 우리 기업의 투자가 견실하게 유지되고 있고, 산둥성 기업에 대한 한국 투자도 증가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상황에도 불구하고 한중 양국은 신속 통로를 개설해 기업인의 원활한 교류를 지원하는 긴밀한 협력 관계를 견지해왔다. 칭다오 총영사관은 지난해 말 요소수 사태에 직면해 중국산 요소 긴급 물량의 신속한 통관·운송 등 수출 재개를 위해 산둥성 정부와 기업의 예외적인 협조를 확보해냄으로써 최악의 물류 대란을 피할 수 있었다. 아울러 코로나19 초기와 현재의 재확산 시기에도 국내 자동차 생산 라인의 필수 부품인 ‘와이어링 하네스’의 중단 없는 생산과 반출을 위해 중국 당국과 협조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냉전 이후 국제 질서가 재편되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유럽에서는 전대미문의 단결력이 억지력 강화로 이어지고, 각국의 자강 노력도 진행되고 있다. 러시아의 ‘긴장 고조를 통한 긴장 완화(escalate to de-escalate)’ 수단인 핵 위협이 미국과 서방의 직접 개입을 억지시켰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가 쇠퇴하고 지정학적 대립이 다시 뚜렷해지고 있다.
미중 간에는 전략적 경쟁 구도가 계속될 테지만 정치 안보적 경쟁과 대립 측면 외에 경제적 공존과 글로벌 과제에 대한 협력 필요성도 병존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국제 정세와 안보 환경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해 국익을 지키고 규범에 입각한 국제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한미 동맹을 강화하고 유사 입장국과 협력을 적극 모색하는 것이 긴요하다. 이와 동시에 중국과의 관계에 내실을 다져 나가기 위한 현실주의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한중 양국은 올해 수교 30주년이라는 중요한 시기를 맞이했다. 한중은 새로운 국제 질서의 전망 아래 새로운 30년의 요구에 부응하는 한중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우선 ‘한중 문화 교류의 해’를 계기로 양국 국민 간 상호 이해를 심화시키고, 양국 관계의 토대인 인적 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한 창의적인 해법이 논의되기를 기대한다. 둘째, 상호 존중의 정신에 따라 서로의 체제나 가치의 차이를 인정하고 갈등이나 이견을 적절히 관리해야 한다. 셋째, 양국 관계의 발전이 국민의 이익을 확대하고 삶의 질을 높이며 지역과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에도 기여한다는 것을 체감하도록 적극적인 외교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한중 양국이 서로에 대한 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새로운 30년의 미래를 열어 나가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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