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50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장애인은 공공장소에 나오지 못했다. 이동이 불편해서가 아니다. '법'이 그렇게 정하고 있었다.
지금에서야 역사적으로 '어글리 로(ugly law: 추악한 법)'이라고 부르고 있는 몇몇 지방조례에 따르면 1974년까지도 미국 시카고에서는 신체 절단이나 몸이 기형인 장애인들은 시민들에게 혐오감을 주지 않도록 공공장소에 나오지 못하게 했다. 또 공공생활의 흐름을 방해하지 말 것을 규정지었다.
이런 류의 조례들은 샌프란시스코, 포틀랜드, 뉴올리언스, 덴버, 오마하 등 미국 전역에 광범위하게 퍼져있었다. 주로 빈곤층과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어글리 로'를 어기는 이들은 벌금을 물거나 감옥에 갇혔다. 단지 '혐오감'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산업혁명 이후로 대두된 '사회진화론'이나 '우생학' 따위의 논리로 장애인을 공공사회로부터 분리시키는 것, 그들을 '거세'시키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기에 이르렀다.
이런 분위기를 반전시킨 것은 다른 이가 아닌 장애인 당사자들이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크립 캠프: 장애는 없다'는 바로 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세상을 바꾼 장애인들의 이야기이지만, 처음부터 행동에 나서지는 않는다. 다큐는 그저 캠프를 즐기는 이들의 모습을 자유롭게 기록한다. 재생 버튼을 누르면 캠프 속으로 들어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곳은 1951년부터 1977년까지 미국에서 열렸던 10대 장애인들의 여름 축제 '캠프 제네드(Camp Jened)'다.
다큐는 생생하게 살아있다. "여자 지도교사가 저한테 처음으로 키스하는 법을 가르쳐줬어요, 제 생애 최고의 물리 치료였죠!" 캠프 제네드에서 뛰고 구르고 노래하고 키스하는 이들의 즐거움과 환호는 흑백 필름을 뚫고 선명하게 전해진다. 이곳은 장애인들의 '우드스톡 페스티벌'이었다.
다큐는 캠프 제네드의 활동을 기록한 영상과 제네드 출신 장애인들의 현재 모습을 교차하며 보여준다. 특히 눈에 들어온 것은 장애인들 자신의 목소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점이다. 카메라는 뇌병변 장애를 앓으며 캠프에 참가한 한 여성에게 마이크를 가까이 갖다 댄다. 혹시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어도 문제 없다. 자막이 알려준다, "여기는 유토피아예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한데 섞여 소통하고 뛰어놀던 캠프 제네드. 이곳에서 장애인들은 마침내 깨닫는다. 캠프가 종료된 이후에도 이곳에서 만난 유토피아를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로 한다. 그들은 1972년 10월 뉴욕 매디슨가 한복판에서 휠체어를 타고 차도를 점거한다. 장애인들을 향한 차별요소를 없애고 동등한 시민으로서 권리를 보장하라는 이들의 요구는 여러 시위와 집회 끝에 마침내 쟁취된다.
'장애인은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연방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는 프로그램이나 활동에 따른 혜택에서 배제, 거부되거나 차별받을 수 없다'는 내용의 재활법 504조가 그 주인공이다. 법이 제정된 시기는 1973년 9월, 장애인들의 첫 시위 이후 1년 만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았다. 법은 통과됐지만 대통령은 비용이 많이 든다며 시행을 미뤘다. 이에 장애인들은 1977년 미국 전역의 보건교육복지부 사무실을 점거하기에 이른다.
다큐에서 누군가는 말했다. 과거 흑인이 차별받던 모습 그대로 장애인이 차별받고 있다고. 다큐를 보고나니 이런 생각이 든다. 과거 흑인을 향했던 시선이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듯, 과거 장애인을 향했던 시선 역시 오늘날까지 계속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이 다큐가 말하고 있는 목소리는 단 하나다. 장애인도 사회의 같은 일원이라는 것.
마치 우드스톡 페스티벌처럼 결코 어둡지 않게, 밝고 재치있는 분위기가 이 다큐의 장점이다. 미국 전 대통령 오바마 부부가 설립한 영화제작사 '하이어 그라운드'가 제작했다. 지난 해 미국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상 후보였다. 오는 4월 20일 장애인의 날에 볼 만한 수작이다.
◆시식평 - 장애는 없다, 장애는 없다, 장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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