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아홉'을 통해 간접적으로 죽음을 겪은 배우 전미도가 곁에 있는 사람에 대한 소중함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그는 조금 부족할지라도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면 괜찮은 인생이 된다는 걸 배웠다.
JTBC 새 수목드라마 '서른, 아홉'(극본 유영아/연출 김상호)은 마흔을 코앞에 둔 세 친구 차미조(손예진), 정찬영(전미도), 장주희(김지현)의 우정과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배우를 꿈꾸던 정찬영은 좋은 기회를 잡았으나, 첫 촬영 날 사고가 생기면서 일이 꼬여 버린다. 그러나 연기의 끈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그는 옛 연인인 김진석(이무생) 소속 배우들에게 연기를 가르쳐 주면서 살고 있다. 그는 마흔이 되기 전 가정이 있는 김진석을 정리하고 새로운 삶을 꾸리려고 하지만 청천병력같은 시한부 판정을 받는다.
"시놉시스에 전체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었어요. 디테일한 사건들은 표현되지 않았지만, 결국 찬영이가 죽고 친구들이 곁에 있는 이야기란 걸 알았죠. 4회까지 대본을 받았는데 정말 재밌었어요. 여자친구들 이야기고, 나이대가 비슷하다 보니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어요. 한 번에 읽었는데, 저뿐만 아니라 대본을 본 회사 관계자나 다른 배우들도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전미도가 간접적으로 접한 죽음은 해소되지 않은 고통이었다. 정찬영이 병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심각하게 그리면 전체적인 분위기가 너무 슬퍼질까 봐 도리어 실없이 웃는다. 때문에 정찬영보다 그의 주변 인물들이 슬퍼하는 장면이 더 많이 나온다. 전미도는 "죽음을 앞둔 고통이 가슴속에 있지만, 연기적으로 표출하지 못하고 감정을 계속 갖고 있는 게 더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해소가 안 되더라고요. 마지막 회에 차미조에게 영상편지를 보내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도 정찬영은 감정을 너무 쏟으면 차미조가 힘들어한다는 걸 알아요. 어떻게든 웃으려고 하는데, 힘들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원 없이 울었지만, 전 그러지 못해서 드라마가 끝난 지금까지 감정 정리가 안 됐습니다."
전미도는 시한부 역할을 맡으면서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정찬영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부고 리스트를 쓰면서 인간관계까지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또 정찬영이 달력을 넘기면서 "크리스마스까지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걸 보고 남겨진 시간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했다고.
"전 쉴 때 사람을 많이 만나는 성격이 아니에요.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집순이 성향이 강하죠. 정말 친한 친구들이야 주기적으로 만나지만, 주변 사람들이 만나자고 하면 구체적인 약속을 잡기 힘들었어요. 그런데 죽음과 시간에 대해 생각한 후 바뀌더라고요. 이제는 약속이 생기면 바로 잡아서 만나는 편이에요."
"제가 만약에 시한부가 되면 어떻게 할까라는 생각도 해봤어요. 저도 정찬영과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병실에 누워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결과를 기다리며 스트레스 받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걸 할 것 같아요. 정말 소중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시청자들도 전미도의 시한부 연기를 보고 죽음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전미도는 "시청자들이 '나의 사연을 생각하게 만든다'고 댓글을 달더라. 물론 배우들에 대한 연기 칭찬도 좋지만, 이 드라마를 통해 자신들의 친구나 먼저 돌아가신 분들을 생각했다는 게 뿌듯했다"며 "죽음을 생각하면 현재 삶을 돌아볼 수 있지 않냐. 생전 장례식이 특히 생각할 거리를 던진 것 같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전미도는 연기에 대한 열정이 강한 점도 정찬영과 비슷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정찬영이 연기 노트를 쓰는데, 전미도 역시 생각이 날 때마다 써야 되는 성격이라고. 다시 보지 않을지언정 뭐든지 써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배우로서 일에 대해 갖는 열정이나 태도도 비슷했다. 다만 작품으로 풀리지 않은 정찬영과는 반대의 상황이었다.
"제가 오디션을 보지 않고, 제안을 받으면서 작품을 하는 시기가 오기 전까지는 정찬영과 마음이 똑같았어요. 오디션 보고, 떨어지고 '다음 작품을 뭘 해야 되지?' 고민하던 시기요. 그런데 그 시기 이후 꾸준히 작품을 해와서 그런지 정찬영과 완벽하게 똑같다고는 할 수 없어요."
정찬영이 유부남을 만나는 서사는 이해되지 않는 점이었다. "불륜 설정 때문에 출연을 망설였다"는 전미도는 고민을 거듭하다 결정적으로 드라마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지막 정찬영의 선택과 작품의 메시지 자체에 초점을 맞췄다.
"시청자분들은 '저렇게 쿨한 찬영이가 어떻게 유부남을 만날 수 있냐'며 이해가 안 될 수 있어요.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 부분은 현명한데, 다른 부분에서는 바보스러울 수 있잖아요. 연애를 잘하는데 일은 못한다든지, 일은 잘하는데 연애는 못한다든지. 찬영이가 후자예요. 제 친구 중에도 남자 문제로 그러는 친구가 있어요. 오히려 이런 설정이 현실적으로 느껴지더라고요. 쿨한 정찬영이 만약 남자관계까지 완벽했다면, 그 인물이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이 이렇게 슬플까 싶기도 해요. 일도 안 되고, 사랑도 안 되고, 어떻게 보면 인생을 잘 못 산 것 같은데 든든하고 훌륭한 친구들이 있었기에 결국은 '잘 살았다'는 메시지가 있는 것 같아서 하게 됐어요."
전미도는 정찬영처럼 30대 후반인 미혼 여성들에게 "각자의 계획대로 삶을 꾸려나갔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그는 "아무래도 그 나이대가 사회적인 기대에 부응해야 될 것 같은 부담감이나 스트레스가 있다. 그건 사회적인 기대일 뿐"이라며 "내 인생을 굳이 남들과 똑같이 평균적으로 살 필요는 없다"고 했다.
"'서른, 아홉'은 '아 재밌다'고 끝날 작품이 아니에요. 다른 사람의 이야기인데 분명히 내 이야기로 들어가게 만드는 힘이 있어요. 아마 많은 분들이 제가 촬영하면서 생각했던 생각과 마음을 고스란히 느꼈을 거라고 생각해요. 현재 내가 살아가는 위치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 혹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인연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드라마로 남길 바라요."
서른아홉이라는 나이를 지나 어느덧 40대에 접어든 전미도는 새로운 시작을 꿈꾼다. 그는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1, 2와 '서른, 아홉'까지 주요 배역으로 세 작품을 했지만 아직 완벽히 여기에 적응했다고 보기 힘들다. 알 것 같은 마음은 있다"며 "앞으로 더 알아가는 40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