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모든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다. 살아나고 또 자라나면서 인간에게도 삶의 의지를 불어 넣는다. 봄이라는 계절이 주는 이 특별함을 계기로 만들어진 기념일이 있다. 1981년 처음 지정된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이다.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고 장애인의 재활 의욕을 고취하기 위해 제정된 이날은 민간단체에서 개최해 오던 '재활의 날'을 나라에서 '장애인의 날'로 지정하면서 지금껏 이어졌다. 오늘 보면 딱 좋은 영화를 가지고 왔다.
정반대 두 남자의 기막힌 동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언터처블:1%의 우정'이다. 영화는 전신불구의 상위 1% 백만장자 필립(프랑수아 클루제)과 가진 것이라곤 신체 뿐인 하위 1% 무일푼 백수 드리스(오마 사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필립은 자신을 돌봐주는 이가 없다면 하루 24시간 중 단 1분의 시간도 제대로 보내지 못한다. 반면 드리스는 자유로운 성격으로 하루하루 거침이 없다.
필립은 그런 드리스 모습에 강한 호기심과 새로움을 느낀다. "이웃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왔다", "'장애우'를 친형제처럼 여긴다"라며 지루하고 추상적인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들과 드리스는 차원이 달랐다. 그는 백만장자 필립의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뻔뻔하게 음악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형식적인 이야기에서 벗어나 자신을 일반 사람처럼 대하는 드리스에게 필립은 궁금증이 생긴다.
■필립과 드리스의 특별한 관계
두 사람의 관계성은 영화 오프닝에서 함축적으로 드러난다. 조수석에 앉은 필립, 운전대를 잡은 드리스. 둘은 속도를 즐기며 '경찰 따돌리기' 내기에 한창이다. 결국 혼신의 연기로 경찰을 속이는 데 성공하고 음악을 크게 틀며 신나게 밤거리를 활보한다. 외모도 재력도 신체도 정반대, 극과 극인 두 남자가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우정을 쌓아간다. 드리스가 운전대를 잡은 것처럼 필립의 팔과 다리가 되어주고 필립은 어려운 처지의 드리스에게 일과 머물 곳을 제공하며 정신적 지주가 되어준다. 드리스는 필립에게 자유를, 필립은 드리스에게 안정감을 주는 것. 후에 필립은 드리스를 고용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장애인이란 걸 잊고 사는 것 같거든. 날 보통 사람처럼 대한다니까."
■영화 속 '욕실'엔 숨겨진 의미가 있다?
영화에는 무수히 많은 메타포가 사용된다. 두 사람의 관계와 욕망, 그리고 성장까지 다양한 의미가 암시된다. 먼저 '욕실'은 드리스의 욕망을 자극하는 매개체다. 그는 복잡한 가정 환경 속에 여러 명의 동생들, 가난한 집까지 말 그대로 하위 1% 무일푼 백수다. 그런 드리스에게 깨끗한 욕실과 여유로운 샤워는 사치일 뿐이다. 좁디좁은 욕실에 거대한 몸을 욱여넣어 샤워라도 해볼까 하면 동생들의 방해로 실패하기 일쑤다.
반면 필립의 집 욕실은 그가 꿈꿔왔던 '화장실이 우리 집 거실보다 크다!'의 표본. 드리스는 필립을 돌볼 시 자신이 사용하게 될 욕실에 눈이 번쩍 뜨인다. 깔끔한 욕실은 은근히 감성적이고 자유로운 그의 마음 깊은 곳 욕망을 건든다. 욕실 하나에 일하겠다 결심하는 모습은 드리스의 단순하고 쿨한 성격을 보여주기도 한다.
담배 이야기도 안 할 수 없다. 영화 속에서 담배는 짧은 자유, 혹은 쾌락이다. 필립은 연애편지를 쓸 때에도 스핑크스니, 천사니 고지식한 이야기만 늘어놓는 빡빡한 인물이다. 반대로 드리스는 처음 본 비서에게도 시답지 않은 농담을 거침없이 던진다. 드리스를 제외한 다른 간호인들은 필립의 흡연을 극구 반대한다. 움직이지도 못하는 필립의 흡연은 폐 건강에 직결되기 때문.
누구보다 정확한 성격의 필립이 이 사실을 모를 리는 없다. 그에게 폐 건강보다 시급한 것은 극심한 약 부작용(환상통)과 우울감이었다. 그런 그의 상황을 진심으로 알아주는 사람은 오직 드리스뿐. 답답함과 불안함, 고통을 잊게 하는 것에 집중했던 드리스는 필립에게 담배 한 입을 건넨다. 필립은 담배를 통해 안정감과 잠시 동안의 자유를 느낀다. 그에게 가장 필요했던 무언가는 장애인으로서의 독립성도 건강도 아닌 찰나의 자유였던 것. 필립의 가려운 곳을 드리스가 긁어준 셈이다.
극이 절정에 다다랐을 때 필립은 발가벗은 여인이 뒤를 돌아앉은 그림 하나를 감상한다. 그리곤 그림 속 여인이 금방이라도 뒤를 돌아 자신을 바라볼 것 같다 말한다. 필립이 바라보는 그림은 그의 현재 처지, 혹은 욕망을 뜻한다. 필립은 선천적으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다. 패러글라이딩을 하다 척추를 다쳐 장애를 얻게 된 후천적 장애인이다. 하물며 그는 장애를 얻기 전 활동적인 스포츠를 즐겼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때문에 그에겐 금방이라도 일어나 세상을 향해 달리고픈 욕망이 존재한다. 연애편지만 주고받는 여성과 관계를 발전시키고픈 마음, 느려터진 휠체어에 속력을 붙이고 싶은 마음까지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욕망이 늘 깊은 곳에 존재한다. 그에게 돌아앉은 여성의 그림은 자신의 조용한 욕망을 대변하는 하나의 메타포로 작용한다.
■기막힌 우정의 호영향
드리스는 필립 앞 거대한 장벽들을 하나씩 무너뜨린다. 단편적인 예시가 두 사람의 음악 취향이다. 필립은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 음악을 틀겠다면서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을 듣는다. 드리스는 그런 필립에게 "춤을 추게 해야 음악이다, 화끈한 노래를 틀겠다"라며 클래식과 정반대인 댄스 음악을 틀어버린다. 사람들은 하나 둘 드리스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한다. 필립 역시 해맑게 웃으며 음악을 즐긴다.
드리스는 필립이 가지고 있던 두터운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연애도 마찬가지. 자신이 장애인이란 사실에 자신이 없던 필립은 엘레노어와 6개월간 오직 편지만 주고받고 있다. 이 모습이 답답했던 드리스는 무작정 엘레노어의 번호를 알아내 그녀에게 전화를 건다. 이에 필립, 그리고 비서 모두 당황하며 우물쭈물 한 모습을 보인다. '엘레노어에게 전화를 건다'라는 행동 자체를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에겐 실천할 용기와 실행력이 없었다. 필립은 드리스의 거침없는 행동에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솔직하고 과감해진다.
필립과 드리스는 함께 우정을 쌓으며 긍정적으로 변해간다. 선을 넘을 듯 말 듯 한 자유로움을 가졌던 드리스는 이를 그림으로 풀어낼 수 있게 되면서 예술가로 성장한다. 필립은 자신에게 장애를 갖게 했던 패러글라이딩에 다시 도전함으로써 한계를 극복한다.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의 편견을 없앤다. 드리스는 필립의 장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없애고, 필립은 드리스의 겉모습으로부터 오는 오해들을 타파한다.
결국 드리스가 필립의 집을 떠날 때, 그를 기피했던 비서부터 필립의 딸까지 아쉬움의 작별 인사를 건넨다. 편견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연민도 동정도 아니다. 필립이 드리스를, 드리스가 필립을 대한 것처럼 모두에게 대등한 태도와 동일한 대우가 함께하는 세상을 만드는 힘이다.
◆시식평-함께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동정'이 아니라 '동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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