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가 19일 국회 인사 청문회에서 “한국 경제가 장기 저성장(secular stagnation)을 초래할 우려가 커졌다”고 경고했다. 잠재성장률 추락 등에 대한 걱정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중앙은행의 새 수장이 ‘구조적 저성장’을 화두로 꺼낸 것은 그만큼 현실이 엄중함을 뜻한다. 이 후보자는 고물가도 1~2년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같은 날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을 4.4%에서 3.6%로 낮추고 한국의 성장률도 3.0%에서 2.5%로 내렸다. 미국에서는 ‘S(스태그플레이션) 공포’ 돌파를 위한 고육지책으로 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포인트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도 거론됐다. 무엇보다 부채 문제는 후폭풍이 불가피하다. 우리는 가계 부채 1862조 원에 기업 부채까지 더하면 총 4540조 원에 이른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좀비 기업’이 39.4%에 달한다. 반면 부실을 메울 혁신 생태계 구축은 더디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2위로 올랐지만 투자 성과 지표들은 10위 밖이다.
이런데도 우리 정치권은 저성장 늪에서 탈출하기 위한 대책을 고민하지 않고 권력 싸움에 매몰돼 있다. 대선에서 패배한 더불어민주당은 반성도 하지 않고 검찰 무력화 법안을 밀어붙이면서 지방선거 공천을 놓고 내부 다툼을 하고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성장 동력 재점화를 위한 구조 개혁 로드맵을 내놓지 못하고 현금 지원 공약 이행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여야 모두 지방선거를 앞두고 또다시 표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 경쟁을 벌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20일 “임기 중 첫째 정책 방향은 풀 규제는 다 푼다는 것”이라고 했다. 윤 당선인은 경제·안보 복합 위기 극복을 위해 규제·노동 개혁 등을 실천하는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지난 5년간 이념에 얽매여 정책 실패를 낳은 민주당은 기득권 집착에서 벗어나 성장 잠재력 확충을 위해 대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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