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자동차 전용 도로에 들어설 때 반드시 마주해야 하는 진입 금지 표시가 있다. 선명한 진입 금지 표시는 국제적으로 표준화된 둥그런 모양의 붉고 선명한 표지판이다. 그 아래에 한글로 ‘초소형 전기차 진입 금지’라고 별도의 네모난 표지판이 달려 있다. 고속도로를 포함한 모든 자동차 전용 도로에 진입할 때마다 알면서도 깜짝 놀라는 불편한 표지판이 설치된 지도 10년이 넘었다. 얼마 전 외국인 손님이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을 보고 이 표지판이 한글을 모르는 외국인에게는 공포일 수 있음을 깨닫게 됐다. 아래에 달린 작은 추가 설명 표지를 읽지 못하는 외국인으로서는 내가 위험한 길로 들어서거나 주저 없이 역주행을 하는 것으로 느끼고 소리를 지르며 놀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당시 놀란 가슴을 진정하며 설명을 들은 손님은 “그럼 한국에서는 모든 고속도로와 자동차 전용 도로 입구에 자동차 진입 금지 표시가 있는 것이군요”라며 신기해했다. 초소형 전기차 진입 금지 표시판은 국제적 기준으로 보면 혼란스러운 설치물이 된 것이다. 아래쪽 한글 표지판이 틀어져 있거나 꺾여 있는 경우가 가끔 발견되기도 한다.
녹색 성장의 기치 아래 친환경차로서의 전기차를 개발하던 시절, 배터리 성능이 열악한 상황임에도 국가 주도로 개발하고 지원금을 몰아주며 인위적으로 시장을 만들다 보니 여러 가지로 무리가 따랐다. 공공기관에 억지로 보급된 전기차들은 결국 대부분 버려지게 됐고 전기차를 성급하게 보급하려던 조급증의 부작용으로 전국에 이렇듯 생경하고 불합리한 표지판을 만들게 된 것이다. 당시 성능을 생각하면 초소형 전기차는 도로로 나오게 하는 것보다 특정한 지역 내 특수 목적 차량으로 제한하고 지원금을 기술 개발에 투자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또 초소형 전기차 진입 금지 표지판도 오토바이 진입 금지 표지판처럼 한눈에 알아보기 쉽게 만들 여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초소형 전기자동차는 15㎾ 이하의 동력에 최고 속도 시속 60㎞ 이하 성능을 갖는 차로 정의된다. 나라와 지역에 따라 규정이 다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도로교통법 6조에 따라 자동차 전용 도로를 운행할 수 없는 대신 일부 안전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안전성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공공연히 인정하고 공표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소형 전기자동차 시장은 성장하고 있다. 단거리 출퇴근용이나 배달용 수송 기관으로서 유용하기 때문이다.
초소형 전기차는 5년 전 르노 트위지의 국내 시장 상륙으로 새 전기를 맞았다. 국내에서는 대부분 중소·중견 기업이 개발해온 가운데 군산 자동차 부품 공단을 재생할 때 일자리 창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저가의 중국제 배터리와 부품이 물밀듯이 들어오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성급한 규제가 교통 분야에 무리가 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안전을 내세운 ‘30-50 제한속도’ 역시 깊은 연구와 배려, 소통이 부족하고 일방적으로 이상주의를 정책화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인명을 중시하는 안전 위주의 교통 규제에 토를 달 사람은 없다. 그러나 어린이가 없는 주말 학교 앞 8차선 도로에 시속 30킬로 제한 속도 때문에 모든 차량이 브레이크를 밟고 엉금엉금 기어가는 것은 안전뿐만 아니라 환경에도 유익하지 않다. 근본적으로 다른 신호 방식과 시간대별 적용 등으로 규제 방식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애초에 성급하게 추진하면서 경직되고 단순한 규제가 만들어진 것이다.
10년 넘게 지나 전기차의 수준이 크게 발전한 현재에도 돌아볼 소지는 여전히 많이 있다. 많은 지원금을 주고 있지만 혜택은 외국에 많이 돌아가고, 전기자동차의 가격은 여전히 같은 성능이면 기존 자동차의 두 배 정도다. 친환경자동차라고 불리지만 전기를 만드는 발전 과정에서는 친환경화되기에 요원하고 배터리 주요 부품 재료인 리튬·니켈·코발트 등이 세 배 넘게 폭등하면서 공급망 불안 요인이 커지고 있다. 효율 향상과 하이브리드 기술, 저탄소 연료 등 자동차 혹은 모빌리티에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친환경 기술과 에너지 안보에 대한 깊이 있고 면밀한 계산과 신중한 정책 수립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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