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강렬하다. 한여름 밤 둘러앉아 저마다 알고 있는 무서운 이야기를 꺼내놓는 듯 소소한 재미가 있다. 스크린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얼굴들이 들려줘 더 신선한 10개의 괴담, 영화 ‘서울괴담’이다.
‘서울괴담’(감독 홍원기)은 괴이하고 기이한 10가지 이야기를 다룬 옴니버스 K호러 영화다. ‘터널’부터 ‘빨간옷’, ‘치충’, ‘혼숨’, ‘층간소음’, ‘중고가구’, ‘혼인’, ‘얼굴도둑’, ‘마네킹’, ‘방탈출’까지 10개의 에피소드는 일상생활에서 쉽게 경험할 수 있는 소재들로 이뤄져 더 섬뜩하다.
작품이 독특하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는 각기 다른 에피소드를 엮었다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옴니버스는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몇 개의 독립된 짧은 이야기를 한 편의 작품으로 만드는 것인데, ‘서울괴담’은 각기 다른 10개의 에피소드가 이어진다. 한 에피소드당 약 15분 분량이라 웹드라마 10편을 한 번에 보는 듯한 느낌이다. 10~20분 분량의 숏폼이 각광받고 있는 시대에 장황한 이야기로 몰입도를 높이기보다 빠르게 화면을 전환하는 것을 선택한 결과다.
영화계에서는 신인인 홍원기 감독의 연출도 눈여겨볼 만하다. 뮤직비디오, CF 분야에서 감각 있는 연출로 유명한 홍 감독은 ‘서울괴담’에서도 특유의 센스를 발휘해 각 에피소드에 맞는 색감과 분위기를 강조했다. ‘터널’에서는 시종일관 어두컴컴하고 음산한 분위기로 공포감을 높였고, ‘치충’에서는 입안에서 바깥을 바라보는 독특한 구도와 쩍쩍 갈라지는 입안 소리를 ASMR처럼 활용한 오프닝으로 의도적으로 불쾌감을 자극했다. 방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인 ‘중고가구’에서는 벽지나 가구의 강렬한 색감으로 시선을 압도하며 일상적인 곳에서의 낯선 분위기를 연출했다.
‘아이돌 총출동’이라는 편견도 깨지는 작품이다. 배우로 전향한 인피니트 출신 이호원까지 합하면 ‘서울괴담’에 출연한 아이돌 배우들은 총 10명. 골든차일드 봉재현, 러블리즈 출신 서지수, 우주소녀 설아 엑시, 오마이걸 아린, 비투비 이민혁, 몬스타엑스 셔누, 더보이즈 주학년, 알렉사 등이 각 에피소드의 주인공을 맡았다. 공포 영화 특성상 자칫 연기가 오버스럽게 느껴질 수 있지만 적정선을 지키며 꽤 매끄럽게 소화했다. 긴 호흡의 극이 아닌 약 15분 정도 짧은 분량이라 장점이 더 부각된 것이다.
‘치충’의 이호원의 연기는 특히 인상 깊다. 치과 의사로서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공포심을 억누르다가 패닉에 빠지는 연기는 폭발적이다. 아린은 동성애 요소가 있는 ‘혼숨’에서 이수민과 호흡을 맞추며 미묘한 분위기 속의 감정을 잘 짚어냈다. 서지수는 주변 인물이 거의 없는 ‘얼굴도둑’에서 모노드라마급 연기를 펼쳤다. 그는 과도한 외모 집착으로 인해 망상에 빠지면서 급격한 심경의 변화 겪는 것을 탁월하게 소화했다.
10개의 에피소드와 수많은 등장인물로 인해 자칫 작품이 난잡해질 수도 있지만, 중심을 잡을 수 있는 건 탄탄한 연기력의 배우들 덕분이다. 넷플릭스 ‘지옥’에서 화살촉 리더 역을 맡았던 김도윤은 첫 번째 에피소드 ‘터널’로 작품의 포문을 열고 10개의 에피소드가 지나도록 잔상을 남겼다. 두 번째 에피소드도 이열음이 주인공인 ‘빨간옷’으로 배치된 것은 초반 관객들의 집중력을 높이기 위한 방법이다. 이후 아이돌 배우들의 에피소드가 이어지고 중후반부 ‘혼숨’ ‘혼인’ 등에서 배우 이수민, 이영진이 등장하며 극의 무게를 더했다. 오는 27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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