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압박을 받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중국과의 무역 분쟁을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물가를 안정시켜 성난 민심을 달래는 동시에 장기화하는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중국을 최대한 끌어안기 위한 움직임으로 보인다.
25일(현지 시간) 폴리티코와 블룸버그통신 등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최근 바이든 정부의 고위 관리들이 잇따라 중국산 수입품에 부과한 고율 관세를 인하할 뜻을 내비치고 있다. 관세 인하 대상으로 거론되는 것은 총 3200억 달러 규모에 달하는 중국산 소비재들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는 2018년 2200여 개의 중국산 제품에 최대 25%까지 무더기 관세를 부과했다. 이후 2020년 말 양국이 무역 관계 개선에 합의하며 549개를 제외한 나머지 제품에 대해서는 관세 예외를 적용한 상태다.
이와 관련해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산 수입품 관세 철폐에 대해 “검토할 만한 가치가 있다”면서 “우리는 인플레이션을 해결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를 원하고, (관세 인하는) 바람직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달리프 싱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미국은 인플레이션이 심각하고 중국은 공급망을 걱정한다”면서 관세 인하 방침을 시사했다.
트럼프 전 행정부 못지않게 중국에 날을 세워온 바이든 정부의 입장이 바뀐 것은 좀처럼 제어되지 않는 인플레이션 때문이다. 전략비축유 방출과 국내 공급망 강화 등 바이든 정부가 물가를 잡기 위해 내놓은 잇단 조치에도 인플레이션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3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대비 8.5%나 올라 4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때문에 미 재무부는 지난해부터 꾸준히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 인하의 필요성을 제기해왔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도 트럼프 전 행정부 때 부과한 다양한 관세를 철폐할 경우 인플레이션을 1.3%포인트 낮출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게다가 바이든 정부로서는 중국과의 무역 관계를 정상화해 대러 제재를 위한 국제 공조를 강화한다는 노림수도 있다. 싱 보좌관은 “러시아와 중국 관계는 조건 없는 파트너십이 아니다”라면서 “미국은 미중 협력 관계를 전략적으로 일부 유지해야 향후 지정학적 위기를 타개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실제 관세 인하까지는 적지 않은 난관이 남아 있다. 무엇보다 인플레이션 완화를 위한 관세 인하를 지지하는 재무부와 달리 미 무역대표부(USTR)의 경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지난달 의회에 출석한 캐서린 타이 USTR 대표는 현시점에서 관세를 없애면 중국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레버리지를 희생시킬 뿐 아니라 물가에도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 의회 내에서도 대중 관세 인하에 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하지만 워싱턴 정가에서는 바이든 정부가 11월 중간선거 전에 가시적인 인플레이션 완화 효과를 거두기 위해 관세 인하를 서두를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대통령 권한으로 무역법 301조를 동원해 관세 인하를 강행하는 방식도 거론된다. 백악관은 지난달 중국산 소비재 관세를 완화하되 중국에 중요한 산업의 관세를 올리는 방안도 검토했다가 보류했다고 폴리티코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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