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인수위원회에서 대놓고 미국을 편드는 것 아냐?” “물밑으로 뭔가 진행되고 있지 않겠어?”
전직 고위 외교 관리와의 우려 섞인 대화다. 윤석열 정부의 대외 정책은 미국과의 동맹 강화,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에 집중하는 것처럼 읽혀진다. 5년 임기 동안 일견 미국에 올인하는 것처럼 비쳐진다. 백년대계를 위한 외교정책이 추진됐으면 한다. 물론 북한 문제에 너무 매달린 나머지 중국에 지나치게 굴종하는 것으로 비쳐진 현 정부의 대중 굴종 외교도 바로잡혔으면 한다.
사실 중국은 미주 대륙까지 포함된 세계 전략의 역사가 아주 짧다. 청나라 시기까지는 주변국 관리가 주였다. 현재 직접적 접경 국가는 14개국이다. 이들 국가의 인구는 20억 명, 국내총생산(GDP)의 합은 5조 3000억 달러다. 러시아의 경우 인당 소득 1만 달러를 넘고 있지만 평균 인당 소득은 3000달러에 미치지 못한다. 우리는 직접적인 접경 국가는 아니다. 하지만 중국 내 55개 소수 민족의 하나인 조선족의 조국으로서 선진국 대열에 낀 유일한 국가이다. 청나라 시기 조선과는 조공 관계에서 거푸집이었다는 평가가 있다(왕위엔충저, 중국과 미국, 무역과 외교 전쟁의 역사). 그만큼 우리는 대중 외교에 더욱더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 중국의 주류층에 자존심을 살려주면서 설득할 여지가 있다. 나중에 정말 세계국가가 됐을 때 우리에게 하는 조치들이 근거나 예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
중국은 정치·경제적으로 우리를 압박할 수 있는 카드가 다양하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중국의 협력이 다방면에서 필요하다. 중국이 우리 수입 시장의 25%를 점유하고 있다. 품목 집중도가 높으며 농수산물 등 민생과 연관된 제품들이 많다. 기업들이 800억 달러 정도를 투자하고 있다. 그만큼 중국은 마음먹기에 따라서 금수 조치, 투자기업에 대한 까탈스러운 태도로 압박할 수 있다. 실제로 2000년 마늘 파동, 2017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시 롯데 등 트라우마가 있다.
대안은 바로 중국이 절실한 분야에 협력하는 것이다. 물론 첨단 반도체 산업 등은 어려울 것이다. 덜 민감한 전통 산업에서 중국의 지방 발전에 적극 협력하는 것이다. 가령 우리와 인접한 산둥성은 인구 2위의 거대 성으로 인당 소득 10위 지역이다. 성 정부에서는 인당 소득을 끌어올리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을 것이다. 산둥성을 훨씬 발전시키면서 우리의 동반 발전을 추구할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결국 베이징만 쳐다볼 게 아니라 중국 전 지역의 발전 판을 보면서 우리의 대중 관계를 한층 고도화할 필요가 있다.
물론 미중 기술 분쟁의 격화로 우리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이렇게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것은 미국의 절대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을 중국에 설명해야 한다. 또 북한 핵 문제로 한미 동맹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이후 현 조 바이든 대통령까지 요란하게 추구하고 있는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도 미국 편을 들 수밖에 없는 것을 중국은 잘 알고 있다. 구태여 대놓고 중국을 배척하지만 않는다면야. 그러면서 우리는 덜 민감한 전통 산업에서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것이다. 경제 통상 국가로서 미국과 중국 어느 일방만을 편들수는 없다. 배척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극도의 상상력이 요구된다고 본다.
세계 역사상 영원한 패권은 없다. 중국은 산업화를 통한 부국강병이라는 근대 국가 경쟁에서 농경 사회의 성취에만 도취해 서구에 뒤졌다. 그 점에서 우리와 협력할 여지도 충분히 있다. 어제 한미중 학생이 주축이 된 20여 명의 소그룹 지방 현장 조사를 다녀왔다. 이들도 국제 정세로 격론을 벌였다. BTS의 노래가 나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떼창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들이 장래 세계의 명운을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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