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동남아시아 인프라 확충과 해양 경비 강화 등의 분야에 총 1억 5000만 달러(약 1930억 원)를 투자한다. 중국과 가까워지는 동남아 국가들을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 확장판인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로 끌어들이려는 행보다. 바이든 정부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상대하는 와중에서도 대(對)중국 견제를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12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 백악관은 이날 워싱턴DC에서 개최한 미국·아세안(ASEAN) 특별 정상회의에 앞서 이 같은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청정에너지와 디지털·교육 등의 인프라 부문을 포함해 보건과 해양 경비 강화 등을 망라한 ‘패키지’ 지원안이다. 바이든 정부는 지난해 10월에도 동남아에 1억 200만 달러(약 1300억 원) 규모의 지원을 약속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잇달아 투자 보따리를 풀어 동남아 끌어안기에 나섰다고 분석하고 있다. 중국은 인프라 투자 프로젝트인 일대일로 등을 통해 ‘앞마당’인 동남아를 우군으로 붙잡아두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1월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양측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규정하고 3년간 15억 달러 규모의 개발원조를 약속하는 등 물량 공세에 나선 것도 그의 일환이다. 이뿐만 아니라 중국은 지난달 미국과 영국의 영향권에 있던 솔로몬제도와 안보 협정을 체결하며 동남아에서 남태평양까지 보폭을 넓혀 서방을 충격에 빠뜨리기도 했다.
이에 자극을 받은 미국은 서둘러 동남아와의 접점을 넓히고 있다. 바이든 정부가 이번 투자 계획에 동남아 해양 경비 강화용 자금 6000만 달러와 해안 경비 쾌속정 지원 등을 포함한 것도 베트남과 필리핀 등 일부 아세안 국가들이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을 고려했다는 평가다. 상대국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 환심을 사려는 행보라는 것이다. 미 정부 고위 관리는 “동남아가 중국보다 미국과 더 확고한 관계를 추구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바이든 정부는 출범 초읽기에 들어간 IPEF의 동남아 참여도 독려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이미 아세안 10개국 가운데 7개국에 IPEF 참여 ‘초청장’을 보낸 상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동남아 관련 정상회의에 연달아 불참하며 동남아를 ‘경시’했다는 평가를 받은 가운데 조 바이든 대통령이 아세안 출범 이후 55년 만에 처음으로 워싱턴에서 정상회의를 개최한 것도 미국 내 아세안의 위상 변화를 실감케 한다. 미국이 아세안 정상들을 본토로 초대한 것은 2016년 이후 6년 만이다.
미국의 적극적인 행보에 중국은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전날 “미국이 ‘줄 세우기’를 하며 중국의 핵심 이익을 두고 ‘불장난’을 벌여서는 안 된다”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중국 관영 매체들도 “아세안 국가들은 미중 경쟁에서 멀리 떨어지기 원한다”는 논평을 쏟아냈다.
정작 아세안 내부에서도 미국의 적극적인 구애에 대한 회원국들의 반응이 엇갈린다. 훈센 캄보디아 총리는 최근 “강요를 당하더라도 미국과 중국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AFP통신은 “(미국의 동남아 투자 규모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400억 달러 지원이나 중국이 아세안 국가들에 투자한 비용에 비하면 적은 액수”라며 동남아가 미국에 포섭될 유인이 크지 않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반면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는 더 많은 아세안 국가가 참여하기를 희망한다며 IPEF 창설에 환영 의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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