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0시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지하 벙커(정식 명칭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윤석열 신임 대통령이 헌법에 명시된 ‘국군통수권’을 이양받으며 임기를 시작했다. 대통령이 국군통수권을 지하 벙커에서 이양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의 7차 핵실험을 앞두고 우리 정부와 군의 안보 대비 태세를 한층 확고히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그렇다면 위기 발생 시 국군통수권은 제대로 행사될 수 있을까. 군 및 정부의 많은 전·현직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반신반의하고 있다. 역대 대통령 중 유사시 국가 차원의 자위권을 발동하기 위한 국군통수권의 행사 방식을 제대로 이해·숙달한 경우를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군 통수권을 일부 위임받아 작전을 전개해야 할 군은 수년째 대규모 실기동 연합훈련을 못해왔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도 을지연습의 유명무실화로 민관군 통합 방위 태세에 구멍이 뚫리고 있다. 전시동원 제도 보완 작업은 9년째 표류 중이다. 윤석열 정부는 이 같은 문제점들을 반면교사 삼아 변곡점에 선 국군통수권을 기초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고 군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통수권이 뭐길래=우선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국방·안보 당국자들이 국군통수권의 개념과 작동 방식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군 통수권이란 군정권과 군령권을 통칭한다. 이 중 군정권은 병사를 뽑아 교육을 통해 양성하며 군수를 지원하고 국방 정책을 세우는 등의 업무를 뜻한다. 군령권은 병력의 운용·전개·작전 등을 지휘하는 권한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국가원수나 행정부 수반이 군 통수권을 갖는다. 한미와 같은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대통령에게 군 통수권이 주어진다. 내각제 국가에서는 주로 총리에게 군 통수권이 부여된다. 다만 독일의 경우 전시에만 총리에게 통수권이 주어지며 평시에는 국방장관이 해당 권한을 행사한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국군통수권에 대한 근거는 헌법과 국군조직법에 명문화돼 있다. 헌법 74조 1항은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군을 통수한다”고 규정했다.
대통령은 국군통수권 중 국방 목표의 효율적 달성 등을 위해 일부 권한을 위임할 수도 있다. 현재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군령권과 군정권을 위임받았다. 국방부 장관의 군령권 중 대부분은 합동참모의장이 위임받아 행사한다. 또한 육해공군의 3군 참모총장은 국방부 장관의 명령에 의거해 각 군에 대한 군정권을 행사한다. 다만 전시 및 평시 작전통제권 중 전시 작전통제권은 한미연합군사령관에 위임돼 있다. 아울러 한국전쟁으로 인해 유엔군사령부가 한반도에 들어섬에 따라 우리 군은 정전 시 유엔군의 교전 규칙을 따르고 있다.
◇대통령·군부도 작전지휘 주체 몰랐다=군 통수권자 통수권의 복잡한 위임 구조 등으로 인해 작전지휘의 주체를 오인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6년 11월 21일에 벌어졌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군 비하 발언’ 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서 “자기들 나라 자기 군대 작전 통제도 한 개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군대를 만들어 놔놓고, ‘나 국방장관이오, 나 참모총장이오(라는 식으로)’ 그렇게 별들 달고 거들먹거리고 말았다는 거냐”고 말했다.
한미연합사는 양국이 50 대 50의 지분 구조로 공동 출자한 ‘합자회사’와 같다고 볼 수 있다. 한미 양국 중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의사 결정을 할 수 없는 협의 체계로 구조가 짜여 있다. 이는 미국과 유럽의 집단 방어 체계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참고해 한미연합사를 창설했기 때문이다.
연합사 위에는 한미군사위원회(MC)가 군림해 있어 MC를 통해 양군 합참의장이 상호 협의해 연합사에 지침을 내리도록 돼 있다. 또한 MC 위에는 국방장관들의 협의체인 한미안보협의회(SCM)가 존재한다. 만약 전쟁 등의 사태가 벌어지면 두 장관이 SCM을 통해 협의해 전략 지침을 내리게 된다. 따라서 우리 군이 마치 전시에 전혀 작전을 통제하지 못하고 미군의 지시에 따라야 하는 것처럼 발언한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은 국군통수권자로서 매우 부적절했다고 군사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심지어 군 수뇌부조차도 작전 주체를 헛갈리는 경우가 있다. 2010년 11월 23일 북한이 남측을 향해 감행한 연평도 포격 사태 때가 그러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예비역 장성은 “이명박(MB) 정부 시절 연평도 포격 사태가 터지자 우리 군 지휘부는 (자위권 차원에서) 전투기를 띄워 (도발 원점에 대해) 폭격을 해도 되는지 (몰라) 미국 측에 전화로 물었다”며 “미국 측이 ‘자위권 발동은 한국이 알아서 결정할 사항’이라고 답한 뒤에야 우리 군은 전투기를 띄웠지만 공대지용 무장을 하지 않아 제때 대응을 못하고 되돌아와야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가의 자위권 행사는 국제법상 국가가 갖는 신성불가침의 권한임에도 이것을 (유엔사나 한미연합사에)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인지 헛갈려서 (미국에) 물어보는 한심한 상황이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시 대비 태세 보완 방향은=지난 수년간 북한은 각종 미사일 등의 공격 능력을 고도화한 반면 이에 대응하기 위한 우리 군과 정부의 연습·훈련에는 공백이 생겼다. 당초 우리 정부 차원의 위기 대응 숙달 프로그램인 ‘을지연습’과 한미군사연습을 통합한 ‘을지프리덤가디언(UFG)’이 있었으나 문재인 정부 출범 후 폐지됐다. 대신 우리 정부의 자체적인 을지태극연습이 2019년부터 실시됐다. 그마저도 해당 연습은 지난 3년간 사실상 유명무실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 결과 유사시 비상 대응 체계를 공무원 등이 숙달하지 못하는 등 전쟁 대비 노하우가 잊혀지고 있다는 게 당국자들의 전언이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정부는 독수리훈련 등 대규모 야외 기동 한미연합훈련도 폐지했다. 연습·훈련 공백을 해소하려면 을지연습과 대규모 실기동 한미연합훈련을 복원할 필요가 있다고 군 관계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특히 UFG 재개 등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핵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 수도권에 수분 내 도달하고 짧은 한반도의 종심 구조상 수일 만에 전쟁의 결판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에 대응하기 위한 법 제도 차원의 허점이 있다. 유사시 예비군 등을 동원해 총력전을 펴야 하는데 이를 뒷받침할 평시 및 전시 동원 관련 입법이 ‘절름발이’ 수준이다. 우선 전쟁 발생 시 예비군 등을 총동원하려면 먼저 국회의 의결을 거치도록 돼 있다. 이런 체제라면 북한의 속전속결식 남침 전략에 대응해 전시에 예비군과 물자 등을 동원하기가 힘들 수밖에 없다. 더구나 최근에는 전면전이 아닌 국지전과 같은 상황도 벌어지는데 이에 대비해 적기에 병력 등을 확보하려면 평시에도 총동원보다 하위 수준의 ‘부분동원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의 도입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 2013년과 2014년 부분동원 제도 도입을 골자로 한 ‘통합방위법 개정안’이 당시 송영근 의원의 주도로 대표 발의됐지만 진보 진영의 국민기본법 침해 논란 등에 부딪혀 입법에 이르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는 임기 중 부분동원제의 입법화에 재시동을 걸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킬체인' 단행 가능한가=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과정에서부터 북한의 미사일 도발 등에 대해 선제적 대응(이른바 ‘킬체인’) 방침을 여러 차례 밝혔다. 대북 선제 타격이 침략 행위를 금지한 국제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그러나 기존의 관례나 국제 규범에 미뤄볼 때 적의 공격 징후가 명확하고 상황이 급박하며 무력 수단으로 대응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이 없을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자위권 차원의 선제적 무력 사용을 할 수 있다는 게 국제법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다만 선제적 무력 사용이 자위권 차원에서 불가피했음을 사후에 입증할 수 있는 능력이 갖춰져야 한다. 이는 감시정찰위성, 전자신호 수집 체계, 휴민트 등 다양한 출처의 정보 자산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가 유사시 선제적 자위권을 결심해 군 통수권을 행사하려면 정보 감시 자산 확충 예산에 한층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