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김선욱(34·사진)을 따라 다니는 대표적인 수식어는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다.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던 지난해에도 베토벤의 후기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했다. 그는 베토벤 외에 브람스의 곡 해석에도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김선욱은 1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리사이틀을 앞두고 최근 서울경제와 만나 “이번에는 베토벤·브람스를 탈피하고 싶은 게 컸다”고 말했다. 그가 “심신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음악은 아니다”라고 웃으면서 평가한 베토벤·브람스 대신 15일에 이어 18일 서울 마포아트센터, 19일 경기 광주시 남한산성아트홀로 이어지는 리사이틀의 프로그램을 채우는 건 슈베르트·리스트, 그리고 스페인의 작곡가 알베니스다. 김선욱은 “유년시절 가장 중요했고 좋아했던 두 곡을 연주하게 됐다”고 말했다. 슈베르트 ‘네 개의 즉흥곡’은 여섯 살 때 부모님을 졸라서 악보를 산 첫 곡으로 앙코르로만 주로 연주하다가 진지하게 연주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리스트의 ‘소나타 b단조’는 그가 10대 시절 자주 연주했고 콩쿠르에서도 여러 차례 연주했던 곡이다. 그리고 리스트를 존경했던 알베니스의 모음곡 ‘이베리아’의 총 4권 중 2권을 프로그램에 넣었다. 그는 웃으며 “알베니스의 곡을 연주하고 싶어서 리스트와 슈베르트를 끌어들인 것”이라고 말했다.
김선욱은 지난해 1월 KBS교향악단 연주회에서 지휘 무대에 데뷔하며 피아니스트뿐 아니라 지휘자로서 도전도 시작했다. 올해도 7월 부산시립교향악단 정기 연주회 등 지휘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영국 왕립음악원에 유학할 때도 지휘과로 진학할 정도로 오랜 꿈이었다는 그는 “지휘자와 피아니스트의 병행이 쉽지는 않은데, 사람들이 저를 지휘자로 인식하는 데 걸릴 시간은 5~6년 정도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피아니스트를 그만둘 생각은 없지만 최선을 다할 수 있는 한 열심히 하고 싶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지휘자와 피아니스트 각각의 입장에서 무대에 임할 때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김선욱은 피아니스트는 연주하는 그 순간이 중요하기에 순간적 압박감이 크지만 지휘자는 연주회 며칠 전부터 오케스트라와 보내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무대에 올라선 후에는 단원들을 믿을 수밖에 없다. 단원들과 신뢰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 이미지는 물론 음악을 대하는 자세 등이 모두 영향을 미친다. 그는 “지휘자는 신기한 직업이다. 말 한마디가 조심스럽고 단원들에게 원하는 지향점과 결과물을 사전에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요즘 그의 머릿속에 들어간 화두는 ‘재정비’다. 피아니스트로서 쉼 없이 연주해온 데다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10장의 음반을 녹음해 매년 1개 이상 발매했다. 적어도 음반 발매는 몇 년간 쉬면서 내실을 다지고 싶다는 게 김선욱의 생각이다. 그는 재정비를 생각하게 된 계기로 “당장 앞에 닥친 것들을 하기도 바빴던 20대 시절과 달리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한다는 루틴이 생겼다”는 점을 꼽았다. 그렇다고 너무 음악과 관련한 일을 많이 하다 버거워서 재정비를 생각하게 된 게 아니라 되레 음악에 더 집중하기 위해서라고 그는 여러 번 강조했다.
“베토벤과 브람스를 주로 연주하던 시절은 연주자로서 유년시절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야 음악을 제가 생각하는 해석이나 방향대로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서 음악가로서 시작하는 느낌이에요. 갈 길이 멀지만 여유도 생겼고 잘할 수 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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