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의 후폭풍으로 내로라하는 기업들까지 휘청이던 2009년 9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생존을 위해 전력을 쏟아부은 기업이 있었다. 바로 세계 최대 다이아몬드 채굴 업체인 알로사였다. 푸틴은 알로사의 자금 숨통을 틔우기 위해 재무부 산하 국가귀금속준비국인 ‘고흐란’을 통해 미가공 상태의 다이아몬드 10억 달러어치를 구입하도록 지시했다. 러시아 광산 산업에서 차지하는 알로사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러시아에서 다이아몬드는 1954년 극동의 사하공화국(야쿠티야)에서 처음 발견됐다. 당초 광산 가치가 과소평가됐지만 1957년 채굴이 본격화하면서 다이아몬드의 질적 우수성이 재조명됐다. 이후 발견된 다이아몬드 매장 지역인 아르한겔스크까지 포함해 지금은 러시아 전역 24개 광산에 세계 최대인 6억 5000만 캐럿이 매장된 것으로 파악된다. 러시아 정부는 다이아몬드를 체계적으로 채굴하기 위해 1992년 대통령령으로 알로사를 설립했다. 알로사는 현재 세계에서 다이아몬드 원석의 27%를 공급하며 1위 업체가 됐다. 2013년 기업공개(IPO)를 단행한 알로사는 3년 뒤 러시아 경제의 구원투수 역할을 했다. 유가 하락으로 러시아 경제가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재정이 구멍 나자 2016년 정부 지분 43.9% 중 10.9%를 매각해 522억 루블(약 9300억 원)을 나라 곳간에 조달했다.
알로사의 가치를 잘 아는 미국 재무부는 올 4월 초 보석 업체들에 알로사와의 모든 거래를 중단하도록 하는 제재안을 발표했다. 가뜩이나 공급이 부족한 터에 알로사에 대한 제재가 이뤄지자 결혼반지용 다이아몬드 원석 가격은 3월 초와 비교해 20%가량 폭등했다. 급기야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알로사 제재로 다이아몬드 시장이 붕괴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이아몬드뿐 아니라 원자재 전반의 가격 고공 행진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우리는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자원 외교를 ‘적폐’ 취급한 데 따른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무너진 글로벌 자원 네트워크를 서둘러 복원하는 데 역량을 쏟아부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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