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맞서 국제사회의 강력한 경제 제재를 이끌어낸 공로를 인정받아 마땅하다. 러시아 제재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주요국에 가해진 가장 포괄적인 조치다.
그러나 전례가 없는 이 같은 조치들은 미국이 경제력을 ‘무기화’해 결국 미국에 경제적 초강대국의 지위를 부여한 달러화의 점차적인 지배력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자아낸다.
필자는 세 명의 정통한 소식통으로부터 이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뉴델리의 첫 번째 소식통은 인도 정부 최고위급 인사들 간에 오간 대화 내용을 전했다. 주된 토픽은 미국이 러시아에 했던 것과 같은 조치를 인도에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느냐였다. 브뤼셀의 두 번째 소식통은 워싱턴과 보조를 맞춰 러시아 제재 관련 업무를 수행 중인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유럽연합의 에너지 수입 과정에서 달러화의 역할을 축소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아시아인으로 중국통인 세 번째 소식통은 식품과 기본생필품배급제를 포함한 베이징의 엄격한 상하이 봉쇄 조치가 (대만 침공 이후) 워싱턴의 경제 제재라는 시나리오에 바탕을 둔 실험 중 일부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 세계는 국제 금융 시스템을 완전히 장악한 달러화의 지배력이 기울어가는 게 아니냐는 토론을 벌이고 있다. 골드만삭스와 국제통화기금(IMF)조차 그 같은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필자는 이런 견해에 다소 회의적이다. 효과적인 대안이 마련됐을 때에 한해 달러화의 지배력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중국과 러시아처럼 미국에 적대적인 국가들은 물론 인도·브라질 같은 우호적인 나라들마저 워싱턴의 변덕에 대비해 그들의 취약점을 축소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직 이들의 노력이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글로벌 외환보유액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 20년 사이 72%에서 59%로 줄어든 것은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부분적 이유는 미국이 가진 특권을 워싱턴이 예전보다 불안정하고 예상 가능한 방식으로 휘두르는 듯 보인다는 것이다. 러시아 침공 이전의 20년 동안 워싱턴은 온갖 이유로 제재 조치를 900% 이상 늘렸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과잉 반응으로서 해제해야 마땅하다. 9·11테러 이후 워싱턴은 테러리스트들에게 흘러 들어가는 돈을 추적하기 위해 지나칠 만큼 강압적인 조치를 취했다. 워싱턴은 미국의 제재를 그대로 따르지 않는 금융기관에 가혹한 처벌을 내렸다. 큰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서 ‘무언가 하기를 원하는’ 국내 비평가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미국은 이란과 베네수엘라·북한·쿠바를 비롯한 여러 국가들에 제재 조치를 단행했다. 워싱턴은 이런 타입의 경제 전쟁을 통해 해당 국가의 정권을 교체하는 데 실패한 대신 그곳에 거주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한층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이와 달리 러시아에 대한 제재는 정권 교체가 아닌 정책 변화를 노린 것이기에 한층 효과적일 수 있다.
경제 제재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에 급격히 늘었다. 당시 미국은 유엔이 제시한 틀 안에서 이뤄진 합의 내용을 테헤란이 준수했음에도 이란 핵 협약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했고 이란과 거래하는 기업에 강력한 제재를 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여기에 보태 미국 규제 당국과 판사들도 제재 조치를 어긴 외국 기업들에 벌금을 물렸다. 대표적인 예가 2014년 프랑스 은행인 BNP파리바에 부과한 거의 90억 달러에 달하는 벌금이다. 이런 조치들이 가능했던 것은 오로지 달러의 힘 덕분이었다.
필자는 러시아 제재를 지지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공개 연설에서 제재 조치들을 조목조목 설명해야 한다. 무엇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룰에 기반한 국제 시스템에 가해진 수십 년래 최악의 공격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러시아의 공격이 성공할 경우 기존의 국제 시스템은 산산조각이 날 수 있다. 워싱턴이 우방들과 함께 비상조치를 취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앞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맞먹는 심대한 국제법 위반 행위가 발생할 때에 한해 이 같은 비상조치를 내릴 것이라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미국이 세계 최대 규모의 경제를 가졌기에 달러는 국제 시스템에서 중요한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유동적인 채권 시장을 지니고 있고 달러화는 자유롭게 유통되며, 미국은 임의적 혹은 일방적 행동이 아니라 법의 지배에 기반을 둔 국가로 간주된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미국은 마지막 기준을 지키지 못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와의 싸움이 미국이 가진 유일무이한 금융 슈퍼파워의 지위를 약화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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