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사 사건에서 곤충을 이용해 사망 시간을 추정하는 법곤충감정실이 국내 최초로 설립됐다. 법곤충 감정은 곤충 종류별로 온도에 따른 성장 속도가 일정하다는 특성을 활용, 시신에서 발견된 곤충의 종류와 성장 데이터를 분석하는 식으로 중장기적인 사망 시간을 추정하는 기법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17일 충남 아산시 경찰수사연수원에 법곤충감정실이 문을 열었다. 통상 변사 사건에서는 체온, 시반, 시신 경직도, 위 내용물 소화 상태 등으로 사망 시간을 추정해왔으나 사망한 지 오래됐거나 부패한 시신의 경우 기존 방법만으로는 시간을 알기 어렵다.
미국·유럽 등 주요 국가에서는 이미 법곤충 감정을 보편적인 수사기법으로 활용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한 편이다. 2019년 6월에는 경기 오산시 야산에서 발견된 유골 주위 곤충 번데기들을 분석해 검정뺨금파리, 큰검정파리, 떠돌이쉬파리의 공통 출현한 시기를 바탕으로 2018년 10월 이전에 암매장된 것으로 결론 내고 수사 범위를 좁혔다.
지난해 7월에는 부산에서 아들이 80대 노모가 사망했다고 신고한 변사 사건과 관련, 노모의 괴사 상처에서 발견된 구더기의 길이를 확인한 결과 약 1~1.5㎝로 사망하기 3일 전 산란한 것(승저증)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승저증은 살아 있는 동물 등에 구더기가 발견되는 증상으로 노인이나 유아의 방임·학대 증거로 활용된다. 이처럼 법곤충 감정이 수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국내 곤충 전문인력 부족, 한국 계절과 지역 특성을 반영한 법곤충 데이터 부족으로 활용도가 낮았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경찰청은 2016년부터 5년 동안 법곤충 관련 연구 개발(주관연구기관 고려대 법의학교실)을 통해 한국에 서식하는 주요 파리 3종의 성장데이터를 구축하는 등 감정 기반을 마련해왔다. 올해 4월부터는 추가로 연구 개발을 진행하며 데이터 확대와 감정기법 고도화를 추진 중이다.
이날 문을 연 법곤충감정실에서는 법곤충 감정을 통해 사망 시간 추정뿐만 아니라 사망한 계절, 시신 이동과 약물 사용 여부 등 추가적인 수사 정보를 제공할 예정이다. 김정민 경찰청 과학수사기법계장은 "한국처럼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는 다른 나라, 지역과의 데이터와는 조금 차이가 있어 국내에 맞는 데이터를 구축해왔다"며 "현재 인력은 2명으로, 연 500건가량을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목표는 한국인정기구(KOLAS) 인증으로, 인력도 최소 4명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개소식에 참석한 남구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법곤충 감정기법을 통해 변사사건의 수사역량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국가의 마지막 사회적 책무인 만큼 모든 변사사건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세밀하게 살피겠다"고 말했다.
박성환 고려대 법의학교실 교수도 "법곤충 전문인력 양성 및 연구 활성화를 통해 우리나라 법곤충 분야가 더욱 발전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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