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를 공유하고 신뢰할 수 있는 국가와의 경제안보를 구축하고 확대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특정 국가를 겨냥하는 인상을 주는 것은 지양해야 합니다.”
스탠퍼드대 주최 경제안보 관련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15일 미국으로 떠난 최석영 전 경제통상 대사는 17일 서울경제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국제사회는 이제 자국우선주의가 하나의 현실이 돼버렸다”며 “한국으로서는 미국과의 안보·경제 동맹을 바탕으로 다양한 국가와의 협력을 확대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더욱이 한국은 지정학적으로는 고립된 섬이고 경제를 놓고 보면 대외 의존도가 높다. 이런 상황에서 고립은 굉장히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그는 진단했다. 그래서 경제안보의 확장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또 안보·경제 동맹은 무엇보다도 가치를 공유하고 신뢰할 수 있는 국가와 하는 게 맞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인권·법치 등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와의 협력을 확대하는 게 맞다”면서 “한국은 미국과 군사·경제 동맹을 맺고 있는데 그것을 토대로 협력을 강화·확장하는 게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이 같은 협력의 확대가 특정 국가에 대한 ‘대항’으로 비쳐서는 안 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는 “쿼드(Quad, 미국·일본·호주·인도로 구성된 4개국 비공식 안보협의체)나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등의 참여가 특정국, 예컨대 중국 등을 겨냥한 조치라고 할 필요는 없다”면서 “협력은 협력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최 전 대사는 경제안보 분야의 대가로 이명박 정부 시절 외교통상부(외교부 전신)에서 자유무역협정(FTA) 교섭 대표를 지냈으며 국제 통상의 중심지인 스위스 제네바에서만 두 차례 근무했다.
"한미동맹 바탕으로 국제 협력 체제 강화·확장해야"
최 전 대사는 우선 현 국제사회에 대해 “글로벌공급망(GVC)의 안정성이라든가 기업 활동 이익, 무역 투자 등이 모두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상황”이라며 “가치를 기반으로 하는 국제 협력 체제에 한국이 동참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하고 안정적으로 투자·무역을 하기 위해서는 개방되고 원칙적이며 규범에 따르는 행위가 필요한데 결국 이런 협력은 동일한 가치를 공유하고 신뢰할 수 있는 국가 간에 가능하다는 얘기다.
최 전 대사는 한국이 추구하는 가치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인권·법치 등을 거론하며 “그런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협력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여러 겹으로 만들어놓는 게 유리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양자 간 협정이 될 수 있고 3국 간 협정, 또는 다자간 협정이 될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한국이 미국과 이런 가치를 모두 공유하는 만큼 최 전 대사는 미국과의 군사·경제 동맹 관계를 바탕으로 국제사회와의 협력 체제를 더 강화하고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피력했다. 그는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고립된 섬과 같다. 경제적으로 대외 의존도도 너무 높다”며 “당장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이 될 수도 있고 인도가 될 수도 있으며 인도태평양 지역 국가들이 될 수도 있는데 우리와 동일한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와는 어떤 국가라도 협력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美주도 협의체 참여, 한미 통화스와프 상설화 바람직"
나아가 최 전 대사는 미국 주도의 여러 국제 협의체에 한국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가치를 공유하고 신뢰할 수 있는 국가 간 협력은 권장돼야 할 사안”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구체적으로는 미국이 한국·일본·대만과 맺으려고 하는 ‘반도체 칩4(CHIP4)’와 관련해 “반도체 공급망의 안정성을 위한 미국의 협력 제안”이라며 “국가 안보를 확보하기 위해 파트너 국가의 기업들이 협력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최 전 대사는 ‘반도체 칩4’ 등이 미국 주도의 반중 협의체로 평가 받는 점을 감안한 듯 “대외적으로 ‘특정 국가를 대항하기 위한 동맹’이라고 얘기해서 (중국을) 따로 자극할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칩4 외에 쿼드와 IPEF 등도 모두 마찬가지다. 그는 “중국도 (한국·미국 등과) 가치를 공유하고 상호 신뢰할 수 있다면 협의체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라며 “대외적으로 중국을 겨냥한 대항 조치라고 얘기할 필요는 없다”고 재차 피력했다.
21일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재개 필요성이 거론되는 한미 통화스와프에 대해서는 “사실 국가 경제 위기 상황을 대비하기 위한 일종의 세이프가드 조치”라면서 “경제 위기 상황까지 가면 곤란하지만 이에 대비해서 미리 안전장치로 준비해놓는 것은 굉장히 필요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한미 통화스와프를 상설화하자는 주장에 대해서도 “심리적인 안정성을 줄 수 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中 리스크 어떤 매직 솔루션도 없어…안미경중은 말장난”
윤석열 정부 기간 한미 동맹 강화의 반작용으로 커질 ‘중국 리스크’에 대해서는 “사실 어떤 ‘매직 솔루션(최적의 해결방법)’도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경제가 굉장히 중요하다”면서도 “상호 의존성을 무기 삼아 한국의 핵심적 안보 이익을 훼손하려는 행위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최 전 대사는 박근혜 정부 때 처음 등장한 ‘안미경중’이라는 용어에 대해 “말장난”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대중 경제 의존도 때문에 우리의 국가 안보가 훼손되는 것을 용인해야 하느냐. 그래서는 안 된다”며 “사드 배치라는 결정적 순간에 (미중 사이) 입장을 정해야 하는 때가 오지 않았었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최 전 대사는 “미국과 안보와 경제를 같이 가야 한다”며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원래부터 해온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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