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급등과 경기 악화로 스태그플레이션의 공포가 밀려오고 있다. 지금 상황은 1차와 2차 석유 위기로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했던 1970년대 상황과 유사한 점이 있다. 세계경제는 코로나19에 이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국의 도시 봉쇄로 원자재 공급 위기에 처했다. 반면 석유 위기 발생 이전처럼 재정 확대와 저금리 정책 등 돈으로 경기를 부양해 생산성의 증가는 약화됐다. 이런 점에서 스태그플레이션의 위험이 커졌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한 적은 거의 없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와 코로나19 위기에도 물가 급등은 피했다. 기업이 줄줄이 문을 닫고 실업률이 치솟으며 정권까지 무너진 스태그플레이션의 악몽이 남긴 교훈 때문에 그 이후 국가마다 물가 안정에 힘을 쏟았기 때문이다.
스태그플레이션의 발생은 피할 수 없더라도 피해는 줄일 수 있다. 1980년대 경험을 보면 석유 위기로 인한 물가 급등의 충격은 한국이 선진국보다 2배 이상 컸지만 경기 침체에서 회복력은 선진국보다 3배 컸다. 회복하는 데 걸린 시간도 한국이 유럽은 물론 미국보다 짧았다. 당시의 물가 상승률을 보면 한국은 1980년 28.7%로 치솟았다가 1984년 2.27%로 급감했다. 반면 미국은 1980년 13.55%로 올랐다가 1983년 3.21%로 떨어졌고 유럽은 1980년 13.52%로 올랐다가 1986년이 돼서야 3.75%로 떨어졌다. 경제성장률도 한국은 1980년 -1.65%까지 떨어졌으나 1983년 13.38%로 급등했다. 반면 미국은 1982년 -1.8%에서 1983년 4.6%로 올라갔고 유럽은 1975년 -0.7%에서 1988년 4.2%를 회복했다.
글로벌 공급망 위기는 자원을 무기화하는 국제 정치 질서의 변화에 기인한다. 한 국가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이에 따른 스태그플레이션은 피해를 줄이려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원자재의 대외 의존도가 높고 과도한 규제와 노동시장의 경직성으로 인해 스태그플레이션에 더 취약해졌다. 유럽이 석유 위기에 의한 스태그플레이션의 충격이 크고 오래갔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럽은 석유 위기 이전부터 경제활동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왔고 물가 상승과 임금 인상까지 연동해 노동시장을 경직화시켰다. 고용을 늘리고 복지를 강화한다며 세금을 올리고 재정을 확대했다. 석유 위기가 발생하자 가격과 임금을 통제하는 소득 정책에 기대면서 노조의 파업이 늘고 격렬해졌지만 금리 인상에 대해 고용을 해친다고 소극적이었다.
국제 정치 질서가 악화하면 스태그플레이션의 위험은 커진다. 하지만 어떻게 변화할지 불확실하다. 이런 상황에 섣부른 판단으로 위험을 과대평가하면 피해를 키우게 된다. 즉 오판으로 금리를 지금보다 몇 배 높임으로써 경기 침체의 장기화와 고실업을 자초하기 때문이다. 시급한 일은 스태그플레이션의 피해를 줄이고 회복을 쉽게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5년 동안 1970년대 유럽의 실패를 답습하면서 스태그플레이션에 더 취약하게 됐다. 원자재의 중국 의존도가 높아지고 경제활동에 대한 정부의 통제가 강화돼 경쟁력을 스스로 약화시켰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물가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경제 안보의 강화와 민간 주도 경제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을 극복할 대책으로 방향이 맞지만 성공은 얼마나 빨리 실행에 옮기느냐에 달려 있다. 경제 자유화를 추진하면서 경제정책에 대한 정치권의 간섭을 배제함으로써 석유 위기에 따른 스태그플레이션을 조기에 극복했던 1980년대의 경험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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