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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나 "폭력 반복하는 인류는 괴물…문학이 우릴 인간답게 한다"

■ 작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구르나, 대표작 3편 국내 첫 출간 간담

낙원 - 과거 난민생활 반영한 성장 여정

바닷가에서 - 영국 입국한 난민이 모티브

그후의 삶 - 살아가는 자체의 숭고함 다뤄

"세상은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환대해야"

2021 노벨문학상 수상자 압둘라자크 구르나. 사진 제공=Mark Pringle




문학은 현실을 반영한다. 더 나아가서, 혹자는 이렇게도 말한다. 모든 소설은 작가의 자서전이라고.

202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작품도 그렇다. 그는 탄자니아의 섬 잔지바르 출신의 난민이다. 스무 살, 아랍계에 대한 박해로 고향을 떠나 영국에 정착했다. 그의 글은 어느 작가보다 리얼한 디아스포라 문학일 수밖에 없다. 18일 진행된 출간 기념 영상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개인의 삶과 소설가의 삶은 불가분”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국내에서 처음으로 출간된 그의 대표작 ‘낙원’과 ‘바닷가에서’, 신작 ‘그후의 삶’도 마찬가지로 그의 굴곡진 삶의 영향을 받았다. 세 권의 출간 순서 그대로 작품을 감상한다면 그의 생각과 사상, 인생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세 작품은 출판된 시간적 간극과 설정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 주제에 있어 깊게 연결되어 있지만, 한 권씩 순서대로 곱씹다 보면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식민주의 압제와 인간의 나약함·잔혹함의 비중이 컸던 초기작에서, 그 이면에 존재하는 인간의 사랑과 친절함의 비중이 점점 커지는 최신작까지의 진화는 흥미롭다. 그는 “진실된 글은 인간성의 양면을 모두 다뤄야 한다”고 밝혔다.



1994년 발간한 ‘낙원’은 그의 젊은 시절 난민 생활을 충실히 반영한다. 식민주의의 여파에 휩쓸려 팔려간 주인공 소년 유수프가 아프리카를 떠돌며 겪는 성장의 여정을 그린다. 구르나는 “잔지바르에 돌아갔을 때, 연로하신 아버지가 모스크를 향해 느릿하게 걷는 모습을 봤다”며 “어렸던 아버지가 식민지에서 어떤 경험을 했을지 생각한 계기가 됐고, 그런 구상이 ‘낙원’으로 실현되는 데 10년이 걸렸다”고 집필 비화를 밝혔다.





2001년 ‘바닷가에서’의 메시지는 동아프리카 이슬람 교도들의 생존을 다뤘던 ‘낙원’을 넘어서 ‘우리 모두가 난민’이라는 범위에까지 확장된다. 영국으로 입국하는 여러 국가의 난민을 보고 작품을 구상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한 백발 신사가 망명을 신청하는 모습을 보고 왜 신청한 것인지, 그가 남기고 떠나온 사회와 세상은 어떤 것인지 궁금해진 것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라고 말했다. 한국의 예멘 난민 사태처럼, 영국이 난민으로 인해 사회적 패닉에 빠지는 모습도 영감을 줬다고 전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의 역사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구르나는 ‘바닷가에서’가 한국 독자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가해자가 시간이 흘러 피해자가 되고, 잊은 줄 알았던 아픈 과거를 우연히 떠올리게 되는 아이러니함은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다.



그의 최신작 ‘그후의 삶’은 전쟁의 한 켠에서 꿋꿋하게 평범한 삶을 이어나가려 하는 이들의 숭고하기까지 한 일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다룬다. 비로소 이 작품에 와서야 이전 작품들에서는 내밀하게 숨겨져 있던 ‘살아간다는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 표면에 드러난다. 어떤 순서로 책을 읽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그는 “시간이 없으면 최신 작품부터 읽으라”는 말로 최신작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2021 노벨문학상 수상자 압둘라자크 구르나. 사진 제공=Matilda Rahm


‘한 사람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백만 명의 죽음은 통계다’라고들 말한다. 국내에까지 영향을 미친 예멘 난민 사태, 그리고 최근의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며 우리는 너무나 무감각한 것이 아닐까. 언론을 비롯한 매스미디어의 건조함은 비극에 대한 진실된 공감을 가로막는다. 우리는 거시적 규모의 재난을 오로지 숫자로만 치환한다. 고통받는 이들을 그런 방식으로 연민하기란 실로 불가능하다. 구르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믿기 어렵고 합리화할 수 없는 폭력이 반복되고 있다. 우리 모두는 괴물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2021 노벨문학상 수상자 압둘라자크 구르나. 사진 제공=Matilda Rahm


구르나의 작품은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직 개인적 경험의 공유를 통해서만 우리는 진실로 나와는 다른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 위기에 직면한 시대, 문학의 역할을 묻는 질문에 그는 “인류는 모든 시대 위기에 직면해 왔고 싸워 왔다"며 “문학을 통해 타인의 삶의 조건·생각·행동 양식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답했다. 이어 “문학이 중요한 이유는 인간을 더 인간답게 만드는 데 있다”고 덧붙였다. 다문화와 다언어를 배경으로 하는 구르나이기에 그의 소설의 메시지는 세계 어느 곳에서나 통용될 수 있다.

갈라치기의 시대,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포용이다. 30여년 넘게 10편의 장편소설을 발표하며 부당함에 맞서 소리내 온 구르나는 한국 사회에 대한 조언을 부탁하는 기자의 질문에 고민하며 답했다. “배타성과 타인에 대한 거부는 역사적으로 모든 사회에서 항상 발견되어 왔습니다. 누군가의 삶이 전쟁·폭력·궁핍에 의해 위협받는다면, 우리는 그들을 인류로서 환대할 의무가 있습니다.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환영하도록 가르침이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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