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체인저’와 ‘한국 굴기’.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정상회담 후 첫 만찬의 공식주 선택한 와인은 이 두 단어로 압축된다.
대통령실은 이날 두 정상은 만찬에 사용될 와인으로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의 유명 와인산지인 나파밸리에서 생산되는 화이트와인 샤또 몬텔레나(Chateau Montelena)와 다나에스테이트의 바소(Vaso) 카베르네쇼비뇽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양국정상은 이날 정상회담 후 저녁7시부터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시작되는 공식 만찬에서 화이트와인인 샤또 몬텔레나와 레드와인인 바소 카베르네쇼비뇽을 각각 곁들인 만찬을 진행한다. 와인은 통상 음식과 함께 할 때 화이트와인과 레드와인 순서로 마신다. 만찬은 양국 정상이 화이트와인인 샤또 몬텔레나에 이어 바소 카베르네쇼비뇽을 마시는 순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尹·바이든 전 세계 와인계 지형바꾼
‘샤또 몬텔레나’ 화이트와인로 건배
한미 ‘기술동맹’ ‘게임 체인저’ 상징도
‘샤또 몬텔레나’ 화이트와인로 건배
한미 ‘기술동맹’ ‘게임 체인저’ 상징도
눈여겨볼 대목은 양국 정상이 선택한 두 와인을 만드는 와이너리의 역사다. 화이트와인 품종인 샤르도네로 만든 샤또 몬텔레나 1973년 빈티지(포도를 수확한 해)는 미국 최고의 박물관 중 한 곳인 스미소니언박물관에 전시되어있다. 그만큼 샤또 몬텔레나는 미국을 상징하는 화이트와인이다. 화이트와인을 박물관에서 유물처럼 보관하는 이유는 샤또 몬텔레나 1973년 빈티지의 화이트와인이 현재 세계 최고로 인정받는 미국 나파밸리 와인의 전성기를 열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까지 ‘세계 최고의 와인=프랑스 와인’ 이었다. 하지만 유명 와인메이커들은 이미 마카야마스 산맥과 바카 산맥 사이에 길게 이어진 나파밸리(계곡)가 와인을 생산할 최고의 지형인 점을 간파했다. 나파밸리는 캘리포니아를 상징하는 뜨거운 태양으로 일조량이 풍부해서 포도가 잘 익는 환경이다. 여기에 샌프란시스코 북부의 산파블로만에서 북쪽 나파밸리로 부는 시원한 바람이 밤에는 온도를 낮춰 포도가 적당한 산도까지 갖추게 한다. 나파밸리에서는 1970년대에 이미 좋은 와인이 생산되고 있었지만, 세계 와인산업의 중심인 프랑스에서는 최고의 와인산지인 보르도나 브루고뉴보다 한 급 낮은 품질의 와인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샤또 몬텔레나는 1970년대에 높은 프랑스 와인의 콧대를 꺾고 전 세계 와인산업의 지형을 바꿨다. 사건은 1976년 5월 24일 프랑스 파리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벌어졌다. 미국의 와인이 발전하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던 영국의 와인 상인인 스티븐 스퍼리에(Steven Spurrier)가 프랑스 심사위원을 초청해 프랑스 최고의 와인들과 미국 와인들의 와인라벨을 가리고 시음하는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는 행사를 열었다. 이 행사에는 현재도 부르고뉴 최고의 화이트와인 생산자로 군림하고 있는 도멘 르플레브(Domaine Leflaive)의 1등급 밭(프리미에 크루)뿔리니 몽라쉐 레퓌셀(Les Pucelles) 1973년 빈티지와 라모네-푸르동(Ramonet-Prudhon)의 특등급 밭(그랑크루)에서 만든 바타르 몽라쉐 1973년 등이 출품됐다. 하지만 이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1위를 한 와인은 프랑스와인이 아닌 미국 나파밸리에서 온 샤또 몬텔레나 1973년 빈티지였다.
당시 현장에서 취재하던 타임(TIME)지 특파원 조지 M. 테이버는 이 사건을 1976년 6월 7일자 타임지에 ‘파리의 심판(Judgement of Paris)’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만들어 전 세계에 공개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 나파밸리는 전 세계 최고의 와인산지로 거듭났다. 미국 와인들의 가격을 치솟았고 전 세계 유명 와인메이커들이 나파밸리와 바로 옆 소노마카운티에 자리잡으며 미국 와인을 현재 프랑스와 어깨를 견주는 수준으로 올렸다. 샤또 몬텔레나가 전 세계 와인산업에 ‘게임 체인저’가 된 셈이다. 이 사건은 영화 ‘와인 미라클’로 제작되기도 했다.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 세계 최대의 반도체 공장인 삼성전자 평택 캠퍼스에서 한미가 군사(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와 경제(2008년 한미FTA)동맹에 이어 ‘기술동맹’으로 확장했다고 선언했다. 양국 정상은 이날 정상회담에서 이 같은 사실을 전 세계에서 선언한다. 이어지는 만찬에서 마시는 와인이 바로 ‘게임 체인저’를 상징하는 샤또 몬텔레나다.
레드와인 ‘바소’ 한국인 최초 평점 100점
다나 에스테이트가 만든 상징적 레드와인
뜻은 ‘큰 배’ 한미 ‘포괄적 글로벌 동맹’
다나 에스테이트가 만든 상징적 레드와인
뜻은 ‘큰 배’ 한미 ‘포괄적 글로벌 동맹’
양국 정상이 선택한 레드와인도 눈길을 끈다. 양국 정상이 이날 마시는 바소 카베르네쇼비뇽은 한국인이 나파밸리에 만든 다나 에스테이트에서 생산되는 와인이다. 샤또 몬텔레나가 전 세계 와인산업의 지형을 바꿔놨다면, 다나 에스테이트(Dana Estate)는 한국인이 생산한 와인을 세계 최정상으로 등극시킨 와이너리다. 다나 에스테이트는 동아원그룹을 이끈 이희상 전 회장이 한국인 최초로 나파밸리에 설립했다.
나파밸리 북쪽 포도밭인 로터스(Lotus), 허쉬(Hershey), 헬름스(Helms), 크리스탈 스프링스(Crystal Springs)에서 국제품종인 카베르네쇼비뇽으로 레드와인과 쇼비뇽블랑으로 화이트와인을 만든다. 이 전 회장은 세계 최고의 와인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세계 최고의 와인메이커들을 영입했다. 혼신의 노력 끝에 만든 다나 에스테이트의 로터스빈야드 2007년 빈티지는 당시 세계 최고의 와인평론가인 로버트 파커로부터 평점 100점을 맞는 영광을 안는다. 로버트파커 100점은 당시 와인계에서 세계 최고의 명품 와인으로 인정받는 증서와 같은 것이었다. 한국인이 세운 와이너리가 세계 최고의 와인을 생산하는 순간이었다. 다나는 이 전 회장의 호 '단하(丹霞)'를 따서 만들었다. 또 산스크리트어로 ‘관용(the spirit of generosity)’을 뜻하기도 한다.
양국 정상이 이날 마시는 와인은 다나 에스테이트의 와인이 아닌 세컨드와인인 바소 카베르네쇼비뇽이다. 세계 최고의 명품 와인은 가격이 100만 원을 훌쩍 넘는 경우가 많다. 일일이 수작업으로 와인을 만들기도 하고 공급량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다나 에스테이트는 이 때문에 최상위 와인의 특성을 담은 세컨드와인 바소를 판매하고 있다. 양국 정상이 마시는 바소는 ‘큰 배’라는 뜻을 담고 있다. 양국 정상이 한미관계를 ‘포괄적 전략 동맹’으로 격상하며 한 배를 탔다는 선언과도 이어지는 대목이다. 바소 와인의 라벨에는 조선의 미(美)인 달 항아리를 담았는데 최근에는 동양적인 미를 상징하는 연꽃 문양을 새겼다. 바소는 지난 2010년 서울에서 열린 주요 20개국 정상회의(G20)에서 만찬주로 사용되기도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공식 만찬 와인과 관련해 “ 미국 대통령 초청 공식 만찬의 만찬주는 양국의 특색을 느낄 수 있는 주류로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샤또 몬텔레나 화이트와인과 바소 카베르네쇼비뇽 레드와인의 가격은 10만원 초반대에 형성되어 있다. 대형 와인샵에서는 할인행사를 통해 10만원 이하의 가격에 선보이기도 한다.
한편 이날 만찬 테이블에는 '팔도 산채 비빔밥'이 올랐다. 대변인실은 "팔도에서 나는 제철 나물들을 고추장 소스에 비벼먹는 산채비빔밥은 색과 맛뿐 아니라 계절과 지역,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의미하는 메뉴"라고 설명했다.
식전 먹거리로는 자색 고구마·단호박·흑임자 맛의 전병과 팥 음료가 나온다.
이후 ▲ 향토진미 5품 냉채(흑임자 두부선·이색밀쌈·오이선·횡성 더덕무침·금산 인삼 야채말이) ▲ 강원 양양 참송이 버섯죽과 침채 ▲ 해남 배추를 이용한 숭채만두 ▲ 간장 양념으로 숙성한 수비드(저온 진공 조리법) 방식의 미국산 소갈비 양념구이와 야채 ▲ 팔도 산채 비빔밥과 두부 완자탕 순으로 음식이 제공됐다.
디저트로는 이천쌀과 화이트 초코렛을 이용한 쌀케익, 미국산 견과류와 오렌지 젤리, 국내산 산딸기와 배 등 양국 식재료를 이용한 음식이 나온다. 대변인실은 "장거리로 피곤한 미 대통령의 피로 회복과 소화를 도와줄 후식으로는 매실차가 준비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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