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방문 중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중국의 대만 침공 시 미국이 군사 개입을 할 수 있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중국이 대만에 대한 무력 점령을 시도할 경우 러시아에 가해지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전방위 제재를 받을 수 있다고 밝히면서다. 중국과 북한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과의 긴밀한 협력을 강조한 바이든 대통령은 일본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과 방위비 증강 계획을 지지한다는 입장도 표명했다.
23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도쿄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 이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대만을 방어하기 위해 군사 개입을 할 의사가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렇다(yes). 그것은 우리가 한 약속”이라고 답했다. 그는 이어 “미국은 ‘하나의 중국’ 정책을 인정하고 있지만 대만을 힘으로 빼앗을 수 있다는 생각은 적절하지 않다”며 “우크라이나 사태와 비슷한 대응을 부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시 현재 러시아가 직면한 것과 같은 전방위적 제재가 뒤따를 것이라는 의미다.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 이후 백악관 관계자는 “대만관계법에 대한 우리의 약속을 재확인한 것”이라며 대만 정책에 변화가 없다고 진화에 나섰다. 미국은 대만관계법에 따라 무기 판매 등을 통해 대만의 자기 방어를 지원하고 있으나 유사시 군사 개입 여부에 대해서는 입장을 명확히 드러내지 않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8월과 10월에 이어 이날도 군사 개입 의사를 내비치며 이전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과 방위력 강화 계획도 정상회담 테이블에 올랐다. 기시다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엔 무용론’이 제기되면서 일본에서는 이번 기회에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시도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또한 기시다 총리는 “일본의 방위비 증강 방침을 바이든 대통령에게 밝혔고 ‘반격 능력(적군 기지를 공격해 파괴하는 능력)’을 포함한 모든 선택지를 (일본의 방위 정책에서) 배제하지 않겠다고 전했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액수는 밝히지 않았지만 일본 정가에서 통상 국내총생산(GDP)의 1% 수준에서 편성되는 방위비를 2%로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점을 고려할 때 비슷한 수준의 계획이 회담에서 거론됐을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일본이 방위력을 증강하기로 한 것을 환영한다”며 “보다 강한 일본과 미일 동맹은 이 지역에 좋은 일”이라고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동·남중국해에서의 중국의 현상 변경 시도에 대해서도 양국이 긴밀히 협력해 대응하기로 합의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문제가 심각하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미일·한미일 연계를 강화하는 데도 의견 일치를 이뤘다. 기시다 총리는 “지역 정세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미일 동맹의 억제력을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바이든 대통령과 재확인했다”고 강조했다. 두 정상은 이밖에도 양국 간 반도체 등 신기술, 공급망 문제, 청정에너지 분야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대면으로 공식 회담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편 24일 도쿄에서 열리는 쿼드(Quad, 미국·일본·호주·인도로 구성된 안보협의체) 정상회의에서는 미국·일본·호주·인도 4개국이 중국을 배제한 공급망 구축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요미우리신문은 쿼드 공동성명 초안을 입수해 5세대(5G)와 6세대(6G) 이동통신, 바이오 기술 협력 논의를 위해 4개국 민관 협력을 꾀한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화웨이 같은 중국 통신 기업에 견줄 만한 민간 기업이 4개국에서 성장하지 못했다는 위기감 때문에 이 같은 민관 협력을 시도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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