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하고 나면 딱히 내밀만한 명함이 없어진다. 자신의 전부 같았던 계급장을 떼고 나면 의기소침해지고 갑자기 무기력증에 빠지기도 한다. 자존감은 바닥이고, 남은 삶이 무의미하다고 느끼기 십상이다. 은퇴 후에 없어지는 것이 어디 명함뿐이랴. 머리카락도 점점 없어지고, 가장의 권위, 자신감도 함께 떨어진다. 물론 많아지는 것도 있다. 배우자의 잔소리, 남아도는 무료한 시간, 종편 시청 시간, 정치적 관심도, 손주 돌봄 시간 등은 자꾸 늘어난다.
100세 시대다. 이젠 110세에도 건강하게 살아가는 슈퍼센티네리언(Supercentenarian)도 자주 언급된다. 역설적으로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시대다. 은퇴 후 20~30년이 아니라 40~50년을 더 살아내야 한다. 이처럼 노년만 연장된 삶을 죽을 날만을 기다리며, 곶감 빼먹듯 소비만 하는 비생산적인 삶을 살 수는 없다. 은퇴 후에도 생산적인 일이 필요하다. 우린 좋든 싫든 평생 현역으로 살아야 하는 시대의 맨 앞자리에 서 있다.
그렇다면 오랫동안 현역으로 지속할 수 있고, 수익도 창출할 방법은 없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있다. 자신이 ‘브랜드’가 되면 된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땅에 떨어진 자존감부터 다시 찾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면 그 자체가 행복이고, 또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 진정한 내 삶의 주인공인 ‘나’로 살아갈 힘이 바로 브랜드에서 나온다.
요즘 일반인 브랜드가 대세다. 누구나 유튜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며 개인 브랜드를 알리는 시대가 됐고, 나아가 수익도 창출할 수 있는 세상이 열렸다. 인플루언서 특히 유명 유튜버들은 현대판 연예인으로 브랜딩되어, 각종 프로그램에 얼굴을 내밀기도 한다. 수입도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시니어들은 또 의기소침해진다. 이 나이에 너무 늦은 것은 아닌지, 하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하다. 다행인 것은 퍼스널 브랜딩은 나이와는 상관없다는 점이다. 유튜브 방송 ‘보람TV’의 김보람 양은 2013년생이다. 반면 박막례 할머니(75세)는 70세에 유튜브를 처음 시작했다.
처음부터 유명한 개인 브랜드는 없다. 거창하고 유명한 브랜드보단 나만의 소소하고 개성있는 브랜드부터 하나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꼭 유튜브를 안 해도 된다. 인스타그램 같은 쉬운 것부터 시작해보자. 그동안 카톡으로 친구들과 가족들하고 다소 폐쇄적인 소통을 했다면 인스타그램으로 조금 더 폭넓고 개방적인 소통을 해보는 것이다. 사진 한 두 장에 몇 줄의 글로 당신의 소소한 일상을 기록하고 타인들과 공유하는 것부터 해보라. 낯설지만 놀라운 신세계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내가 좋아하고 관심 있는 것들로 나만의 콘텐츠를 하나씩 만들어 보면 좋다. 그게 바로 당신의 브랜드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고 시작이 될 것이다. 요즘은 콘텐츠만 좋다면, SNS를 통해 나를 알리고 브랜드를 만들어 가기는 어렵지 않다. 앞서 말한 보람TV는 콘텐츠 하나로 10만명이 넘는 구독자를 모은 기록도 있다. SNS를 이용하면 비용도 거의 들지 않는다.
은퇴를 앞두거나 은퇴한 시니어들은 앞으로도 족히 30~40년은 나름의 역할을 하며,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그것도 생산적인 삶을 살아내야 할 운명이다. 아무런 타이틀도 직장도 없는 시니어들은 ‘나’라는 브랜드를 알리지 못하면, 잠정적 실업 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 이제는 평생 현역시대다. 기나긴 남은 세월을 실업자로 살기 싫다면, 나 자신이 브랜드가 되는 게 최선이다. 필자가 장담한다. 당신이 브랜드가 되면 자존감은 상승할 것이고, 어느 정도 수익도 창출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미래 세대와 동시대적 삶을 살 가능성이 훨씬 커진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은퇴 한 시니어들에게 퍼스널브랜딩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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