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정치적 견해나 성적인 부분, 인종, 직업, 경제력 등 여러 요인에 따라 우위에 서기도 열위에 위치하기도 합니다. 오페라의 주 이야기인 두 민족 간의 전쟁은 인간이 우열을 나누면서 벌어진 편견과 배제, 차별의 결과로 나타난 사회적 투쟁에 가깝습니다. 관객 여러분은 작품 속 식민 지배자와 피지배자 간 대립에 스스로를 투영해 볼 기회를 얻을 겁니다”
다음 달 2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국립오페라단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는 ‘오페라의 거인’ 주세페 베르디의 숱한 오페라 중 국내 초연작으로 관심을 끈다. 서곡 ‘신포니아’와 주요 아리아들이 여러 연주회에서 레퍼토리로 사랑받고 있지만 작품 전체가 국내 무대에 오른 적은 없어서 초연을 시도했다는 게 국립오페라단 측의 설명이다. 연출을 맡은 이탈리아 연출가 파비오 체레사는 지난 19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베르디의 작품인데도 연출할 기회가 없어 잘 몰랐는데, 이번 기회로 열심히 공부했다”며 “공부할수록 베르디에게 더욱 존경을 보낸다”고 말했다.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는 베르디가 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기념해 만든 작품으로, 1282년 부활절에 일어난 ‘시칠리아 만종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오페라다. 당시 이곳을 지배한 프랑스 총독 몽포르테와 시칠리아 청년 아리고와 엘레나, 독립투사 프로치다의 이야기다. 체레사는 이번 공연에 대해 “현재의 차별과 배제, 편견과 이를 딛고 나아갈 보편적 평등과 평화를 이야기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19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중세 배경의 오페라에서 어떻게 현대적 의미를 뽑아낼 수 있을까. 그는 “이 작품이 국내 초연인 만큼 가장 본질적인 걸 보여주려 했다. 19세기 중반 오페라는 음악만 있지 세세한 연기지시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무대장치와 등장인물들의 의상에 사용하는 색깔을 통해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간 대립관계를 부각했다. 시칠리아인들이 주로 걸치는 오렌지색은 현지 특산물인 오렌지를 따서 만든 색깔로, 작품 속 모든 피억압자들을 상징한다. 반대로 왕실의 상징색인 파란 옷을 입은 프랑스인들은 현 시대의 억압자를 상징한다. 하지만 모든 색이 사라진 평등의 이상향으로서 흰색을 모든 인물들이 가진 공통의 색으로 설정하며, 평화를 지향하는 방향성을 드러낸다. 체레사는 “현대적 연출가들이 각색한다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상징하며 작품 속 몽포르테는 푸틴, 프로치다를 젤렌스키처럼 바꿀 수도 있을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배제와 차별의 문제는 한국뿐 아니라 유럽 등 전 세계적 화두다. 이 오페라를 본국인 이탈리아에서 상연하고 싶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국가를 불문하고 어느 관객에게도 다가갈 이야기”라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이탈리아도 이민자 문제, 여성혐오, 성소수자 차별 등이 난무한다. 한국과 비슷하다”며 안타까워했다.
체레사는 2016년 인터내셔널 오페라 어워즈가 선정한 ‘영 디렉터’ 상을 받으며 주목을 받은 후 전 세계를 누비고 있다. 한국서 그 해 ‘오를란도 핀토 파초’를 아시아 초연하며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당시 편안한 환경에서 서로 도우며 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는 그는 6년 만에 그 멤버들을 대부분 다시 조우하며 반가움을 표하기도 했다. 소프라노 서선영·김성은, 테너 강요셉·국윤종, 바리톤 양준모·한명원, 베이스 최웅조·김대웅 등 출연진도 화려하다.
그는 인터뷰 말미 “뮤지컬이 관객을 즐겁게 하는 게 목적이라면 오페라는 관객을 계몽하는 게 목적이다. 오페라는 하나의 서사시”라며 장르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국 관객들에게 “연출을 믿고 사심 없이 무대를 감상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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