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 영화 ‘옥자’는 지난 2017년 제70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 후보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초청됐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였다. '옥자'는 넷플릭스가 전액 제작 지원한 작품으로 칸 영화제 상영 당시 5분이 넘는 시간 동안 기립 박수를 받았다. 다만 프랑스 영화산업계는 극장을 거치지 않는 '옥자'의 배급 방식에 문제를 제기했고 이는 당시 영화제 기간 내내 논란 중심에 서야 했다.
최근 MZ세대 사이에 환경과 동물보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영화 ‘옥자’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영화는 돈에 의해 돌아가는 사회와 이에 대한 피로를 얘기한다. 오직 인간의 이익을 위한 동물 대량 생산과 가학적인 도살 방식을 낱낱이 드러낸다. 육식과 도살, 공장식 축산의 민낯을 다루며 이를 노골적으로 풍자한 것. 봉 감독은 영화가 비건(vegan)을 강요하는 작품은 아니라고 말하면서, 이 문제점에 대해 다시 한번 되짚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옥자'는 강원도 산골 소녀 미자(안서현)와 슈퍼 돼지 옥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옥자는 거대 다국적 거대 기업인 미란도 그룹이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낸 슈퍼 돼지다. 미란도 그룹은 홍보 및 그룹 이미지 기여를 목적으로 '슈퍼 돼지 프로젝트'를 개최한다. 옥자를 포함 26마리의 슈퍼 돼지들은 각국으로 보내져 축산 농민에 의해 길러진다. 그중 옥자는 미자와 그의 할아버지 곁으로 가게 됐고 옥자와 미자, 둘은 10년간 친구처럼 자매처럼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간다.
영화의 첫 장면은 미란도 그룹 CEO 루시(틸다 스윈튼)의 강연으로 시작된다. 그는 이전 미란도 그룹 CEO였던 아버지와 언니를 비판하며 자신은 그들과 다른 윤리관을 가지고 있다 말한다. 이어 소개되는 안방극장 최고의 동물학자 조니 윌콕스 박사(제이크 질렌할). 영화의 오프닝 속 두 사람은 누구보다 동물을 사랑하는 윤리적인 사람으로 묘사되지만, 관객들은 이들의 이중성을 얼마 지나지 않아 알아챌 수 있다. 루시가 거짓으로 기업을 홍보하고 있다는 것과 조니 박사가 동물을 그저 이익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 영화는 초반부터 돈을 중심으로 유통되는 사회를 꼬집는다.
옥자는 미자와 둘도 없는 친구로 지내고 있다. 미자가 발을 헛디뎌 절벽으로 추락할 위기에 처하자, 옥자는 침착하게 지렛대 원리를 이용해 미자를 구출한다. 영화 곳곳에서 등장하는 옥자의 높은 지능은 영화 후반 도살장 시퀀스를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오게 만든다. 옥자가 도축장에 끌려가 가학적 행위를 당하게 되는 장면은 이 영화의 핵심 장면인데, 영화는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 슈퍼 돼지들을 이용해 상품을 대량생산하고 이를 소비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교차로 보여주며 폭력을 강하게 고발한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를 제작하면서 두 달간 고기를 먹지 못하게 됐다고 밝힌바 있다. 그는 "2015년 초 시나리오를 쓰면서 실제 콜로라도에 있는 거대 도살장을 방문한 경험이 있다"라며 "하루에 5,000마리의 소를 도살하는 곳이었다, 내가 실제 본 것은 영화 후반 장면의 20배, 30배 더 섬칫한 공간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장 압도적인 것은 피와 배설물과 녹여지는 뼈가 뒤섞인 도살장의 냄새였다, 뉴욕으로 돌아가서도 냄새가 옷에 남아있는 듯한 환각이 느껴져 자연스럽게 고기를 먹지 못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옥자’는 육식 자체를 비판하기 보다는 자본주의의 이중성과 폭력, 공장식 축산에 대해 생각할 지점을 아프게 던진다.
결국 빼앗겼던 옥자를 금돼지와 맞바꾸는 데 성공한 미자. 그럼에도 관객은 영화를 보는 마지막까지 불편한 마음을 버릴 수 없다. 도축될 위험에 놓인 슈퍼 돼지가 비단 옥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도살장 한 쪽, 전기 울타리에 갇힌 수많은 돼지들과 새끼 돼지라도 살리려 온 힘 다해 울타리 밖으로 새끼를 던지는 엄마 돼지의 모습은 많은 여운을 남긴다. 미자가 옥자 구출에 마침내 성공하고, 동물 애호 단체가 미란도 그룹을 폭로 했음에도 영화는 결코 해피 엔딩이 될 수 없었다.
◆시식평-자본과 폭력, 봉준호 감독의 신랄한 풍자
관련기사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