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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브로드컴





2009년 4월 반도체 업계는 5년여 진행된 ‘특허 전쟁’ 결과에 깜짝 놀랐다.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 브로드컴이 ‘기술 공룡’ 퀄컴을 상대로 벌인 소송전에서 승리를 거둔 것이다. 퀄컴은 브로드컴의 특허 사용 대가로 8억 9100만 달러를 지불하기로 했다. 시장에서는 “골리앗이 다윗에 무너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브로드컴은 이처럼 막강한 기술력을 토대로 팹리스 업계 ‘톱3’로 우뚝 섰다.

브로드컴은 1991년 38세이던 헨리 사무엘리 UCLA 전기공학과 교수와 제자 헨리 니컬러스 3세의 의기투합으로 만들어졌다. 첫 작품은 케이블TV용 셋톱박스에 들어가는 반도체였는데 기술이 알려지자 투자자들이 줄줄이 찾았다. 1998년에는 나스닥 상장에 성공한다. 축적된 자본으로 엔지니어를 끌어모았고 통신·네트워크 분야 강소 기업들을 본격적으로 인수합병(M&A)하기 시작했다. 2000년 한 해 11개 등 50개 넘는 기업을 포식했다. 이를 통해 창립 20여 년 만에 1만 5000개 가까운 특허권을 보유하게 됐다.



브로드컴은 2015년 전환점을 맞는다.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아바고에 당시 반도체 업계 최대 규모인 370억 달러에 매각된 것이다. 2년 뒤에는 ‘세기의 딜’을 또다시 추진한다. 최대 경쟁자인 퀄컴 인수를 시도한 것이다. 1000억 달러 이상을 베팅했지만 M&A는 실패한다. 브로드컴이 중국 화웨이와 깊숙한 관계를 맺고 있어서 5세대(5G) 이동통신 첨단 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며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행정명령으로 매각에 제동을 건 것이다. 쓴맛을 봤지만 야심은 멈추지 않았다. CA테크놀로지 등을 사들이며 덩치를 키웠고 지난해 기준 세계 반도체 기업 매출 6위에 올랐다.

브로드컴이 이번에는 델에서 분사한 소프트웨어 업체 VM웨어 인수를 추진한다. 성사되면 인수 금액이 600억 달러 규모로 올 M&A 최대 거래가 된다. 글로벌 기업들이 패권 전쟁에서 생존하기 위해 덩치 키우기에 나서는데 우리 기업의 M&A는 멈춰 있다. 기업들이 야성(野性)을 되찾아 공격적 인수에 나설 때다. 정부도 말로만 “모래주머니를 없애주겠다”고 할 게 아니라 각종 M&A 규제를 없애고 통상 외교를 통해 적극 지원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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