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원(3D) 형상 이미지(홀로그래피) 기술을 이용해 살아 있는 세포가 약물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실시간으로 관찰하고 세포 내부까지 훤히 들여다볼 수 있지요.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것을 보여주는 스마트 현미경 기술이 생명과학 연구와 질병 진단의 틀을 바꿀 수 있습니다.”
홀로그래피 현미경 전문 기업 토모큐브의 홍기현(49) 대표는 25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독자적 혁신 기술로 차세대 현미경 시장의 퍼스트 무버가 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토모큐브가 개발해 내놓은 ‘홀로토모그래피(HT)’ 현미경은 병원 컴퓨터단층촬영(CT)처럼 세포의 3D 영상을 찍는다. PC 본체 크기만 한 현미경 중앙에 혈액 샘플 등을 넣고 레이저를 360도 회전하며 쏜다. 이것으로 얻은 수십 겹의 홀로그래피를 단층 영상(토모그래피)으로 재구성해 3D로 만드는 방식이다. 일반 광학현미경이나 형광현미경을 쓸 경우 미리 형광시약으로 세포를 염색하는 과정에서 세포가 쉽게 죽는 데 반해 토모큐브는 이 같은 전처리를 거치지 않는 분석 기술을 고안했다. 홍 대표는 “살아서 증식하는 병원균 등을 염색 과정 없이 곧바로 장기간 볼 수 있다”며 “세포 내부 구조는 물론 질량·농도 등 정량분석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홀로그래피 현미경 기술은 스위스 기업 나노라이브도 갖고 있지만 연구·의료 분야로 상용화한 것은 토모큐브가 사실상 처음이다. 100㎚(나노미터·10억분의 1m)급 정밀도로 기존 현미경(500㎚급)을 뛰어넘는 영상이 가능한 것은 홀로그래피 이미징 기술 덕분이다. 빛을 세포에 투과하면 세포 구성 물질마다 고유한 굴절률을 보이는데 그 파동 곡선(파면) 데이터로 인공지능(AI)이 구조 영상을 만드는 것이다. 이 기술은 토모큐브 최고기술책임자(CTO)인 박용근(42)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물리학과 교수가 20년간 쌓은 연구 실적이 토대가 됐다. 홍 대표는 홀로그래피 권위자인 박 교수와 손잡고 2018년 토모큐브를 세웠고 이듬해 현미경 시제품을 내놓았다.
홍 대표는 “보통 꼬박 하루가 걸리는 세포 실험 준비 없이 1초 만에 영상이 나오는 것에 당시 국내외 연구자들의 놀랍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며 “선도 기술로 새 시장을 개척하고 있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토모큐브 현미경은 출시 3년 만인 현재 전 세계 18개국에서 쓰이고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하버드대 의대, 존스홉킨스대 의대를 비롯해 독일 암센터 등에서 사용되고 있고 분당서울대병원·서울아산병원 등에도 임상 연구용으로 설치됐다. 연구 논문을 통해서도 인지도를 넓혀가는 중이다. 2020년 3월에는 토모큐브 현미경을 활용한 미 프린스턴대 연구진의 논문이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 셀바이올로지’ 표지 논문으로 실렸다. 홍 대표는 “토모큐브 현미경으로 쓴 전 세계 논문이 줄잡아 100여 편에 이른다”며 “내년에는 의료용 신제품을 내놓아 신속 진단 분야로 확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KAIST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한 그는 연쇄창업자다. 광학 측정 장비 업체 애크론과 와이즈플래닛을 세워 2000년대 매각한 후 세 번째로 창업한 게 토모큐브다. 그는 “진단 분야 의욕이 강했던 당시 박 교수의 기술력은 꿈을 실현할 강력한 툴이었다”며 “여전히 연구자들에게 홀로그래피 기술이 생소한 만큼 시장 개척이 쉽지 않지만 기술 혁신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10건 등 국내외 특허 20건을 등록한 토모큐브는 하반기 고성능 신제품을 내놓을 계획이다. 의료 진단 시장 진출 후 정보기술(IT) 등 산업용 검사 시장도 두드리기로 했다. 홍 대표는 “세계 현미경 시장을 이끄는 독일·일본에 비해 우리나라는 존재감이 없었던 게 사실”이라며 “전 세계 모든 연구실 현미경을 토모큐브 제품으로 대체하는 게 목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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