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코리아가 차량의 결함을 알고서도 수년간 조직적으로 이를 은폐한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파악됐다. BMW코리아 임직원들은 차량 결함과 관련해 독일본사에서 작성된 대책자료에서 화재를 연상시키는 단어를 모조리 삭제하거나 한국 정부에 자료를 아예 제출하지 않는 방식으로 외부에 위험 가능성을 숨긴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담당 부서만이 은폐 작업에 개입했을 뿐, BMW코리아 대표이사는 물론, 본사는 이를 인지하지 못했거나 처벌 대상이 아니라 ‘늑장 리콜’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28일 소비자단체인 소비자주권시민회의를 통해 서울경제가 입수한 BMW 차량 연쇄 화재 사건의 공소장과 불기소이유서에 따르면 BMW코리아 법인과 임직원 4명은 2011년 3월부터 2017년 5월까지 생산된 BMW N47·N57·B47·B37 엔진이 장착된 17만2274대 차량의 결함을 은폐한 혐의(자동차관리법 위반)를 받는다.
EGR 불량 알고서도 조직적 은폐
공소장에는 BMW코리아 측이 2016년 3월부터 차량의 잇따른 화재 원인이 엔진 배기가스 재순환장치(EGR) 불량이라는 점을 인지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디젤 자동차의 질소산화물(NOx) 배출량을 줄이는 장치인 EGR 쿨러의 균열로 냉각수가 새면서 침전물이 쌓이고, 냉각성능이 떨어진 상태에서 고온의 배기가스가 유입될 시 침전물에 튄 불씨로 흡기다기관에 구멍이 뚫려 화재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앞서 BMW 독일본사(BMW AG)는 2015년 3월 N57 엔진이 장착된 차량의 흡기다기관 천공 사례를 처음으로 수집한 뒤 이듬해 3월 BMW코리아 등 각국의 현지법인에게 관련 대책자료를 보내 관련 문제가 발견되면 엔진 등 부품을 교체하도록 지시했다. 이후에도 BMW코리아는 본사로부터 흡기다기관이 녹아내리는 문제와 관련한 대책자료를 계속 전달받아왔다.
BMW코리아 AS부서는 2016년 7월부터 화재사건에 대한 대응을 전담했는데, 국내에서도 ‘흡기다기관 녹아내림’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견됐지만 본사로부터 해결책이 제시받지 못하자 결함 사실을 대외적으로 감추는 대응시스템을 세운 것으로 조사됐다. 사고 차주에 대해선 현금 부상 등으로 분쟁을 조기에 끝내고, 대외적으로 발행하는 기술소견서, 대책자료에는 관련 내용을 빼는 방식이었다. 실제로 2017년 1월 ESG 불량을 원인으로 한 차량 화재사고가 발생하자 AS부서장 전모씨가 주관한 팀장급 회의를 거쳐 고객대응 담당자와 서비스센터 정비담당자에게 각각 “해당 사건을 국과수로 유도해선 안된다”, “고객이 화재가 아닌 일반 차량 고장으로 알게끔 유도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한다.
AS부서 내 고객·기술지원팀 등을 총괄하는 부장 정모씨는 본사에 해당 문제가 정부 조사의 위험이 있을 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언론 보도를 우려하는 내용의 이메일을 전달했다. 이후에도 화재 사고가 잇따르자 AS부서 내에서는 결함 사실을 숨기기 위해 부서장·부장 결재를 거쳐 고객에게 현금으로 보상하고 사안을 종결하도록 했다. 같은 해 7월에도 또 다시 화재 사례가 보고되자 정씨는 “소방서에서 조사가 나올 계획이 없는 경우라면 조기 고객과의 합의를 도출해 정부로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사건을 종결하라”는 취지의 이메일을 직원들에게 보냈다.
독일본사에 “자극적 단어 빼달라”
차량 결함에 대한 조직적인 은폐는 자동차 화재·사고와 관련한 기술분석자료를 발행한 경우 일정한 기간 내에 국토교통부에게 이를 제출하도록 자동차관리법이 개정돼 2017년 7월 시행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AS부서는 국토부 주관 회의에서 그 무렵 해당 법에 따라 본사로부터 전달받는 대책자료가 기술정보자료에 해당해 국토부에 제출해야 한다는 점을 알게 되자 “본사가 하달하는 대책자료를 BMW코리아가 국내에 발행하기 전 영어 번역본의 자극적인 단어를 순화해야 한다”는 취지의 대응책을 세웠다. 이러한 작업의 일환으로 국내에 흡기다기관 녹아내림 사례가 발생해도 이를 독일본사에는 보고하는 한편, 대외적으로는 감추는 조치를 취했다. 본사로부터 하달 받는 대책자료에서도 화재를 연상시키는 표현들이 모조리 빠졌다. 구체적으로 △흡기시스템이 녹아내림→흡기시스템이 손상됨 △녹아내리는 현상→열변형 현상 △유발하는 발화→유발하는 현상 등 녹아내림 및 발화와 관련된 표현이 삭제되거나 변경돼 국내 딜러사 서비스센터에 배포됐다. 오히려 AS부서 측은 본사에 국토교통부의 불필요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thermal(열)’, ‘melting(녹아내린)’ 등의 단어는 국토부에 제출할 의무가 있는 대책자료에서 수정하거나 지워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특히, 이번 사건의 결함으로 인한 화재가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도 화재가 아닌 기타로 분류하거나 제출하지 않는 방식으로 국토부에 제출하지 않았다고 검찰은 판단했다.
검찰은 또 AS부서 측이 본사로부터 B47, N57 엔진의 EGR 쿨러의 불량이 화재와 연관된다는 점을 빠트린 내용의 ESG 쿨러 교체 관련 결함시정계획서를 환경부에 제출했다. 이에 2018년 4월 해당 차량에 안전운행에 지장을 주는 결함이 있는 점을 모른 채 ‘EGR 쿨러 교체 필요성’의 공지만 담긴 환경부 리콜이 실시됐다.
“BMW 대표이사·본사 개입 증거 없어”
다만 검찰은 김효준 전 BMW코리아 사장이 차량 결함을 알고도 이를 은폐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검찰은 김 사장이 2018년 3월에서야 처음으로 AS부서장인 전씨로부터 흡기다기관 녹아내림과 관련된 화재 발생 사례를 보고받았고 이메일·회의자료 등 업무상 자료를 살핀 결과, 김 사장이 결함 은폐에 가담했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범행을 주도한 AS로부터 수시로 보고를 받은 본사도 책임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은 “자동차관리법의 수범자는 국토교통부장관에게 등록한 자동차제작자 등에 해당하는 BMW코리아”라며 “BMW AG 및 그 임직원들은 결함의 공개, 시정조치 의무를 부담하는 수범자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앞서 김 전 사장을 기소의견으로 송치한 경찰의 판단과는 다른 부분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경찰은 김 전 사장이 2016년 2월 차량 화재 사과와 관련한 ‘안전사고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같은 해 8월부터 ESG 쿨러 고장을 화재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보고서가 회사 내에서 공유된 점을 근거로 화재 원인을 사전에 알고서도 ‘늑장 리콜’을 했다고 판단했다. 김 전 사장은 경찰 조사과정에서 “2018년 7월 본사 측 디젤 엔진 총괄책임자가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 결함사실에 대해 설명을 듣고 결함을 인지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또 독일본사 역시 ESG 쿨러 결함사실을 은폐했다고 봤다.
검찰은 “이 사건은 BMW코리아 AS부서에서 고객지원 및 기술지원 임직원들이 공모해 차량 일부에 ESG 장치 불량으로 흡기다기관 천공이 발생해 엔진정지 및 차량화재로 이어지는 안전운행에 지장을 주는 결함이 있는 점을 알면서도 결함이 발각될 것을 우려해 정부에 제출해야 하는 기술분석자료 일부를 제출하지 않은 것”이라며 “김 전 사장과 본사가 결함을 알면서도 은폐에 관여했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고발자인 소비자주권시민회의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몸통 부분은 빠진 채 꼬리 부분에 대해서만 검찰에서 기소한 것”이라며 “조만간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불복해 항고장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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