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주영에게 영화 '윤시내가 사라졌다'는 새로움 그 자체였다. 휴머니즘이 바탕이 된 가족영화도 처음이었고, 대선배들과 호흡을 맞추는 것도 처음이었다. 또 로드 무비 장르, 유튜버라는 독특한 캐릭터도 기분 좋은 도전이었다. 이번 작품을 통해 연기의 폭을 넓히게 된 이주영은 주연배우로 극의 중심을 잡고 이끌어 갈 힘을 얻었다.
'윤시내가 사라졌다'(감독 김진화)는 이미테이션 가수 연시내로 활동하는 신순이(오민애)와 관종 유튜버 장하다(이주영) 두 모녀가 전설의 디바 윤시내를 찾아 나서는 여정을 그린다. 전설적인 가수의 실종으로 떠들썩한 대한민국, 20년간 모창 가수로 일해온 신순이는 꿈도 일자리도 잃어 절망에 빠진다. 장하다는 우연히 찍힌 엄마 연시내 영상의 조회수가 급상승하자 대박 콘텐츠를 꿈꾸며 엄마와 함께 윤시내를 찾는 여정에 나선다.
영화 '독전',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 임팩트 있는 연기로 사랑받아온 이주영은 휴머니즘에 기반이 된 가족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는 갈증이 있었다. 때문에 '윤시내가 사라졌다' 출연 제의를 받자마자 다른 이유를 제쳐두고 즉시 출연을 결정했다. 그간의 연기적 갈증이 해소되는 선택이었다.
처음 대본을 본 이주영은 장하다의 천방지축 태도와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조회 수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감행하는 '관종' 유튜버로 남자친구를 속이고 엄마를 조롱거리로 만들면서까지 관심을 받으려는 모습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때문에 캐릭터를 완벽히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끊임없이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결국 캐릭터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고, 내면의 사정에 공감하기에 이르렀다. 보다 보니 자신과 닮은 구석까지 발견하게 됐다.
"엄마와 여정을 떠나고 시간을 보내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장하다가 왜 관심을 받고자 하는지에 대해 납득을 할 수 있었어요. 그건 엄마에게 받고 싶은 관심이었죠.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분노가 내재돼 있으면서도 사실은 엄마에게 받고 싶은 관심을 남들에게 갈구하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저 역시 부모님에 대한 결핍이 있어요. 제가 동생과 연년생이라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관심이 동생에게 쏠리는 걸 그저 참으며 컸어요. 혼자서 굉장히 잘 놀았는데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그건 건강한 방식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건강한 아이들은 질투를 한다는데 저는 그 질투를 참기만 했으니까요. 제가 가진 이런 결핍 덕분에 장하다에 더 이입하고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 감독이 이주영을 캐스팅한 이유도 이런 장하다의 천방지축 태도를 희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자칫 밉상으로 그려질 수 있는 캐릭터가 이주영과 만나 특유의 사랑스러움이 첨가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저는 비호감 캐릭터에 대한 걱정은 없었습니다. 처음엔 미워 보일지라도 관객들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휴게소 신을 보시면 장하다의 미운 행동들을 모두 이해하게 되실 거라고 믿었어요. 장하다가 엄마에게 아픈 상처를 보여주고, 속마음을 모두 털어놓는 휴게소 신이 있었기에 앞 부분에서는 조금 더 비호감으로 보여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가수 윤시내와의 연기는 이주영에게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윤시내에 대해 잘 몰랐던 이주영은 아버지에게 물어보면서 윤시내와 친밀해질 수 있었다. 그는 "아버지가 '윤시내는 초특급이지'라고 하시더라"며 "선생님의 영상을 찾아보니 이 시대에 어떻게 이런 분이 존재했나 싶었다.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한국의 레이디 가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애정을 표했다.
“선배님과의 연기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영광이었어요. 특히 윤시내와 계단에서 첫 대면하는 신은 영화의 중요한 장면이었기 때문에 더 신경을 많이 썼어요. 선배님과의 촬영이 긴장됐지만, 장하다는 윤시내와의 만남을 어려워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더 담담하고 담백하게 보이려고 노력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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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배들과의 연기 호흡을 통해 이주영은 캐릭터 자체에 몰입하고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배웠다. 처음 경험하는 감정 표현은 이주영에게 영광 그 자체였다고. 특히 모녀 호흡을 맞췄던 오민애에게는 더 애틋한 감정을 느꼈다.
"인물에 몰입해서 이야기를 따라갔을 때, 캐릭터 자체를 이해하고 그대로의 감정이 나오더라고요. 특히 엄마와 화해하는 휴게소 신, 윤시내와 만나는 계단 신은 정말 장하다의 감정 그대로 표현된 것 같아요. 오민애 선배님과 촬영하면서 힐링이 많이 됐어요.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연기할 수 있다는 것 자체도 힐링 포인트였고 이렇게 큰 역할을 맡았다는 것 역시 감사했죠. 오민애 선배님께서 전주국제영화제 배우상을 수상하셨을 땐 저까지 울컥해서 눈물이 났어요. 당시 저는 서울에 있어서 수상 장면을 영상으로 봤는데 선배님께서 그동안의 힘든 과정을 버텨주신 덕에 장하다의 엄마가 돼주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로드 무비 특성상 차 안에서 촬영되는 장면이 많았다. 좁은 공간에서의 촬영은 자칫 힘들 수 있지만, 이주영에게는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배우, 제작진과 옹기종기 모여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었다고. "열악한 촬영 현장도 그저 재밌고 행복하기만 했다"는 이주영은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배우였다.
"공간이 주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비록 차가 작아서 촬영 감독님께서 쭈그려 앉으셔야 할 정도였지만 나름의 아기자기한 맛이 그대로 잘 담긴 것 같아요. 차에서 찍었기 때문에 작품의 분위기를 더할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저 역시 촬영하면서 에너지를 정말 많이 받았고요."
이처럼 큰 롤을 맡아 스크린을 압도한 이주영의 연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다. 그는 그간 '몸값', '독전', '라이브' 등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연이어 좋은 작품을 만난 그는 이를 두고 "행운"이라 표현했다.
"과거 모델 일을 했을 때는 일 하나하나가 정말 어렵게 풀렸어요. 연기는 시작하자마자 좋은 작품을 만나서 신기했죠. '몸값'은 당시 정말 많은 영화제에서 상을 받을 정도로 주목을 받은 작품이었어요. 어떻게 이런 작품을 만났을까 감사했습니다. 저에게는 행운 같은 작품이에요. 이로 인해 '독전', '라이브' 오디션을 볼 수 있었으니까요. 또 저는 인복도 많아서 좋은 감독님들과 행복하게 촬영하는 것 같아요."(웃음)
단순히 행운이라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 이는 이주영 만의 자연스러운 연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자신의 연기적인 매력을 인정하며 신선한 매력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개인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움이에요. 진정성이 가장 중요하죠. 감독님들께서는 제 연기를 보시고 신선하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세요. 정석대로 연기하기 보다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보이려고 하는 스타일 덕분에 그런 것 같아요. 큰 키라는 외형적인 모습도 무시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다 보니 또박 또박 말하는 것에 대해 이질감을 느끼는 편이에요. 촬영하면서 사운드 감독님들께 발음 지적을 들어보지 않은 적이 없을 정도죠. 그런데 발음을 신경 쓰다 보면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장하다를 연기할 때 역시 제한을 두지 않고 자유롭게 연기하려 노력했어요."
앞으로 이주영은 한계 없는 배우가 되고 싶다. "모든 장르를 연기할 자신이 있다"는 그는 "현실과 밀접한 이야기와 밑바닥에 있어 외면하고 싶은 감정을 다뤄보고 싶다"며 "많은 분들이 로맨스 하는 이주영은 상상이 안 간다고 하는데, 로맨스도 잘 할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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