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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악연? ‘골프 여제’와 ‘천재 소녀’가 그린 평행선[골프 트리비아]

■소렌스탐과 미셸 위 이야기

골프 인생 중요 길목마다 상반된 행보

미셸 위 데뷔전 실격 때 소렌스탐 우승

2007년 소렌스탐 대회서 미셸 위 기권

소렌스탐 고별전서 미셸 위는 컷 탈락

올해 US 여자오픈선 귀환-은퇴 무대

1996년 US 여자오픈 우승 당시 안니카 소렌스탐. 사진 제공=USGA




2014년 US 여자오픈에서 우승한 미셸 위. 사진 제공=USGA


제77회 US 여자오픈을 맞아 안니카 소렌스탐(52·스웨덴)과 미셸 위 웨스트(33·미국)가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소렌스탐은 이번 대회에 복귀했고, 미셸 위는 이번 대회를 끝으로 사실상 은퇴 수순에 들어가면서다. 열아홉 살 차이가 나는 둘은 여자 골프의 역사에서 한 획을 그었다. 두 개의 태양이 존재할 수 없듯 ‘골프 여제’와 ‘골프 천재’로 불린 이들은 그리 친밀한 관계는 아니었다. 악연에 좀 더 가까웠다. 다섯 개의 장면을 통해 달라도 너무 달랐던 둘의 골프 여정을 돌아봤다.

#1. 2005년 10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삼성 월드챔피언십. 열여섯 미셸 위의 프로 데뷔전이었다. 미셸 위는 단독 4위로 경기를 마쳤지만 스코어카드 제출 후 10분 만에 실격 통보를 받았다. 3라운드 때 잘못된 위치에 드롭을 하고 그에 따른 2벌타를 보태지 않아 결국 스코어 오기(誤記)를 했다는 것이다. 이 대회 우승자는 서른다섯의 소렌스탐이었다. 8타 차 완승으로 단일 대회 5회 제패의 대기록을 달성한 소렌스탐은 “모두가 누군가에 대해 얘기할 때 나는 더 나은 플레이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 ‘누군가’는 미셸 위였다.

#2. 북유럽에서 자란 소렌스탐은 12세 때 처음으로 자신의 골프채를 얻었다. 그마저도 여동생과 공동 소유여서 소렌스탐이 홀수, 동생은 짝수 번호를 가졌다. 수줍음 많던 소렌스탐은 주니어 대회에서 우승 인터뷰 하기가 싫어 마지막 홀에서 3퍼트를 하기도 했다. 따뜻한 섬 하와이에서 성장한 미셸 위는 12세 때 이미 주목 받는 스타였다. 2002년 LPGA 투어 다케후지 클래식에 역대 최연소로 출전했고, 이듬해에는 US여자아마추어 퍼블릭링크스 챔피언십에서 최연소 우승을 차지했다. 2004년에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소니 오픈 2라운드에서 68타를 쳐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3. 소렌스탐은 22세 때인 1992년 프로로 전향했지만 그해 LPGA 투어 퀄리파잉(Q)스쿨에 낙방해 1년 간 유럽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었다. 하지만 그는 1995년 US 여자오픈에서의 첫 우승을 시작으로 ‘투어의 지배자’에 올랐다. 2005년 하와이에서 진행된 미셸 위의 프로 전향 기자회견은 미국 전역에 생중계될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나이키와 소니로부터 연간 1000만 달러의 후원 계약을 이끌어냈으나 프로 무대 성적은 메이저 1승 포함 통산 5승에서 멈췄다.



3일 US 여자오픈 1라운드 중 남편 캐디인 마이크 맥기와 상의하는 안니카 소렌스탐. AP연합뉴스


미셸 위가 3일 US 여자오픈 1라운드 5번 홀에서 퍼트 라인을 읽고 있다. AFP연합뉴스


#4. 2008년 US 여자오픈. 소렌스탐이 최종 라운드 마지막 홀에서 6번 아이언으로 친 세 번째 샷이 홀 속으로 사라졌다. ‘여제’의 극적인 퇴장이었다. 그는 “투어를 떠나지만 언젠가 돌아오는 날이 온다면 그건 US 여자오픈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 대회 첫날 미셸 위는 8오버파 81타로 최하위를 기록했고, 2라운드 후 짐을 쌌다. 그보다 1년 전인 2007년엔 소렌스탐이 주최한 긴 트리뷰트에 초청을 받고 출전해 1라운드에서 2개 홀을 남기고 기권했다. 표면적 이유는 손목 부상이었지만 실제로는 ‘88타 룰’(LPGA 비회원이 한 라운드에 88타 이상을 기록할 경우 당해 연도 잔여 대회 출전금지)을 피하려 한 것이라는 의심을 샀다. 소렌스탐은 “초청해준 스폰서에 대한 존경심이나 책임감이 없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미셸 위는 “사과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소렌스탐은 이듬해 대회 때는 미셸 위를 초청하지 않았다.

#5. 2022년 6월 3일 개막한 US 여자오픈. 소렌스탐은 14년 전 약속대로 돌아왔다. 그 사이 12세 딸 아바와 11세 아들 윌의 엄마가 됐다. 이번 대회에서 아이들은 엄마를 응원하고, 남편은 아내의 골프백을 멨다. 소렌스탐은 “가족을 위한 일이 아니라면 내가 플레이를 할 이유가 없다. 이건 우리 가족 모두의 일이다. 우리는 한 팀”이라고 했다. 미셸 위도 이번 US 여자오픈에 나선다. 하지만 은퇴 무대다. 그는 2020년 태어난 딸 마케나를 위해 떠난다고 했다. 각종 부상에 시달린 그는 “골프를 많이 치면 그냥 침대에 누워 있을 때가 있고, 딸을 들어 올릴 수도 없어 무서웠다”고 말했다.

소렌스탐은 LPGA 투어에서만 72승을 거뒀다. 미셸 위는 기대만큼의 우승컵을 수집하진 못했지만 투어를 뛰면서 스탠퍼드대를 졸업하고 여자 골프의 새로운 수준을 보여주는 등 ‘창조적 파괴자’의 길을 걸었다. 가치 판단의 문제를 떠나 둘은 절대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을 그려온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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