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첫 국회 시정연설에서 “연금·노동·교육 개혁은 지금 추진되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이 위협받는다”며 구조 개혁 의지를 밝혔다. 이 가운데 노동 개혁은 초격차 기술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 시급히 추진해야 할 과제다. 노동 경직성은 이미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주요 요인이 된 지 오래됐다. 한국노동경제학회장을 맡고 있는 김진영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6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경제가 성장하려면 노동을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하는데 이 부분이 막혀 있다”며 “노동환경이 과거 노동을 착취하던 시대와는 완전히 달라진 만큼 노동 유연화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많은 사람들이 노동 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지금 노동 개혁이 필요한 이유는 뭔가.
△지금은 어느 때보다 경제성장이 시급하다. 경제성장은 노동을 필요한 곳에 잘 배치해 효율적으로 사용할 때 가능해진다.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해야 하는데 정부가 이 일을 할 수가 없고 노동력을 제공하는 본인도 잘 모른다. 기업은 원하지 않는 사람을 뽑을 수 있고 사람도 원하지 않는 자리에서 일할 수 있다. 이런 미스매치를 해결하려면 노동 유연화가 필요하다. 개인에게도 만족스럽게 일하고 기술과 재능을 극대화하는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며 그래야 소득도 늘어난다.
-우리나라의 노동 유연성이 왜 낮은가.
△사회 안전망 문제가 크다. 한번 직장을 잡으면 적성에 맞지 않아도 그만둘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다른 직장으로 갈 때까지 실업 상태로 있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소득이 떨어지는 데다 정부 보조도 충분하지 않아 생계에 문제가 생긴다. 이로 인해 안정적 직업에 대한 선호가 엄청 강해졌다. 초기 노동운동에서도 안정적인 직장을 가장 중시했다. 외환 위기 때 들어선 김대중 정권 때 처음으로 해고 이슈가 공론화됐다. 이때부터 노동 안정성과 함께 유연성도 중요한 과제가 되기 시작했다.
-노조는 노동 유연성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다.
△지난 20년 동안 경제가 엄청 발전했다. 특히 서비스 산업과 문화 산업이 많이 발전했다. 제조업 노동시장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에 걸맞은 노동의 새로운 틀이 필요하다. 노동시장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변화해갈지 예상하기는 어렵지만 어떻게 바뀌든지 그에 적응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 개혁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개혁은 방향성과 디테일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문재인 정부 때 도입한 주 52시간 근로제는 우리의 경제 수준을 볼 때 당연한 제도다. 문제는 주 52시간제가 경직돼 있다는 점이다. 탄력근로제(특정일의 노동시간을 연장하는 대신 다른 날의 노동시간을 단축해 평균 노동시간을 맞추는 방식) 단위 기간이 주 단위로 돼 있어 일감이 몰릴 때 대응하기가 어렵다. 정부가 심판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잘못도 크다. 노사 양측에서 같은 거리만큼 떨어져서 교섭의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 정부의 가장 큰 역할인데 그것을 포기하고 한쪽에 치우쳤다. 정부가 조금 어려워 보이는 일은 하지 않고 무슨 위원회를 만드는 식으로 외주를 줘 처리하려고 한 것도 잘못이다. 최저임금을 올려야 되겠다고 생각했으면 노사를 모아놓고 어떤 근거에서 어느 정도를 올려야 하는지 등에 대해 직접 설득했어야 맞다.
-문재인 정부 당시 최저임금을 너무 가파르게 올렸다는 지적이 많았다.
△최저임금을 급박하게 올리면 고용주는 직원을 해고하고 고용하지 않으려 한다. 최저임금은 복지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저임금은 임금이 낮은 사람의 소득을 보전해주는 개념이다. 지금 한국 정부는 국민 개개인의 소득과 자산 정보를 꿰차고 있다. 전산망을 이용해 소득과 자산에 따라 자동으로 지급하면 된다. 전체적으로 통합된 복지 정책이 절실하다. 근로장려세제, 자녀장려금, 기초생활보장법상의 생계·주거·의료·교육 급여, 지방자치단체의 복지 정책 등이 산재해 있다.
-사회 안전망 구축과 노동 개혁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시급한가.
△물론 안전망 구축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안전망은 노동 개혁에 앞서서 먹고사는 현실의 문제이기 때문에 국민이 보수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 국민이 거부하면 원하는 방향이 아무리 좋아도 갈 수 없다. 해고가 되더라도 어느 정도 소득이 생기고 사업이 망해도 정부가 지원해준다는 믿음이 있어야 개혁에 참여할 수 있다. 하지만 안전망을 완벽하게 구축한 다음 노동 개혁을 하라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과 같은 얘기다. 정부가 안전망에 대해 어떤 식으로 꾸려나가겠다는 청사진을 국민에게 제시하고 동시에 노동 개혁에 나서는 것이 맞다.
-대표적 안전망인 고용보험은 수혜 대상이 많이 넓어졌다.
△실업 때문에 소득이 떨어질 수도 있고 스타트업을 하다가 망할 수도 있는데 이런 경우에 보호해주는 제도가 고용보험이다. 피고용자가 기업과 같이 돈을 내서 만들기 때문에 세금을 걷어서 하는 복지와는 다르다.
-노동 유연성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쉬운 해고인데 우리나라는 어떤 상황인가.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표한 한국의 노사 관계가 꼴찌 수준일 정도로 문제가 많은 것은 유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을 보면 기업이 저성과자에 대해 해고할 수 있다는 조항 자체가 없다. 해고를 하지 말라는 조항만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해고 문제로 법정에 가면 방어가 되지 않는다. 기업이 원하는 성과를 내지 못하거나 적성에 맞지 않는 사람은 해고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
-사용자 측에서는 근로시간 유연화 요구가 많은데.
△스타트업들을 만나 얘기를 들어보면 주 52시간제를 지키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한다. 탄력근로 단위 기간을 1년으로 늘려 개별 기업 상황에 맞게 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임금 유연화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임금 유연화는 정부가 정책으로 밀어붙일 일이 아니다. 기업 내부적으로 노사가 결정할 문제다. 호봉제를 개편해야 한다는 얘기가 많지만 당장 없앨 것은 아니며 기업 내부에서 관행 등을 고려해 정하면 된다. 정부가 기업의 임금 결정 과정에 직접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고용과 관련한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우리나라는 파견법에 따라 파견을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32개 업종에 한해서만 파견이 허용돼 있는데 이를 대폭 완화해야 한다. 근로자를 2년 이상 고용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한 기간제법 규제도 문제가 많다. 근로자가 원하면 몇 년이건 계속 근로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맞다. 노동 유연성에는 이렇게 쉬운 고용, 근로시간 유연화, 임금 유연화, 쉬운 해고 등 크게 네 가지 이슈가 있다. 임금 유연화 이슈에서는 정부가 개입하지 말고 나머지 이슈에서는 정부가 과잉 개입한 부분을 빼야 한다. 그래야 노동 생산성이 올라간다.
-문재인 정부 때 인천국제공항 사태로 비정규직 문제가 불거진 적이 있다. 어떻게 처리하는 게 바람직한가.
△외국에는 파트타임은 있어도 비정규직이라는 개념은 없다. 다분히 정치색을 띤 용어다. 외국에서는 파트타임 숫자가 많이 증가한다. 많은 사람이 일을 유연하게 하고 싶고 소득이 충분하면 일의 양도 줄이고 싶어한다. 파트타임은 전혀 문제가 없다. 한국은 파트타임이 아주 나쁜 것으로 인식돼 있다. 파트타임을 원하는 사람도 있고 결혼 전까지만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유형의 직업은 모두 없애야 하는가. 아니다. 비정규직이 임금을 적게 받아 4대 보험료를 내지 못하는 등의 문제가 생긴다면 그 부분을 보전해주면 된다. 직종 자체를 없애는 것은 잘못됐다.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하는데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임금이 적은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있다.
-윤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노동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제 기준의 관점에서 우리나라 노사 관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과거에는 기업이 노동을 착취했고 노조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노동환경도 많이 변했다. 더 이상 기업이 노동을 착취하는 구조가 아니다. 노동환경은 바뀌었는데도 대표성이 많이 떨어진 노조는 여전히 센 힘을 휘두르고 있다. 노조원 자녀를 고용하는 음서제 같은 것은 문제가 심각하다. 반대로 중소기업이나 자영업 현장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근로자들이 많다. 그래서 더욱 사회 안전망이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 당시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노동 개혁을 담당했는데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 개혁은 어디에서 논의하고 추진하는 것이 좋을까.
△노동 개혁이니까 노동을 담당하는 고용노동부가 하면 될 것이다. 대통령이 개혁의 방향을 제시하면 고용부가 이를 정책으로 만들어 추진하면 된다.
-야당이 다수당인 상황에서 새 정부의 노동 개혁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노동 개혁은 여야 간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다. 국민의 일상과 직접 관련이 있는 문제여서 국민 설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야당도 노동 개혁 이슈에서는 정부 여당이 아니라 국민을 바라보면서 추진해야 한다.
◆He is…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시카고대에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게리 베커 교수의 지도를 받고 1994년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6년부터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현재 한국노동경제학회 회장과 미국의 유수 학회지인 ‘인적자본저널(Journal of Human Capital)’의 부편집위원장을 맡고 있다. 유럽인구경제학회가 시상하는 쿠즈네츠상을 수상했다. 여성가족부 정책자문위원, 국무총리실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전문위원, 공공기관장 경영계획서 이행실적 평가단 팀장,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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