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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국경 넘는 阿·중동 '식량 난민'…"연말까지 15만명 유입"

사하라선 10년만의 흉작까지 겹쳐

스페인 등 유럽 남부로 밀려들어

이집트선 반정부 시위 등 연쇄파장

푸틴 "우크라에 묶인 곡물 풀겠다"

조건부 허용에 국제사회 반신반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3일(현지 시간) 모스크바 크렘린궁(대통령실)에서 현지 로시야 1TV 방송과 인터뷰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세계 식량난이 유럽 난민 문제로 비화하고 있다.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굶주림에 시달린 식량 난민 수만 명이 지중해를 건너 유럽 남부로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발(發) 식량 위기가 일파만파로 번지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국제 여론 악화를 의식한 듯 우크라이나 항구에 묶여 있는 곡물 수천만 톤의 수출을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지역을 거치는 경우’에 한해 조건부로 허용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국제사회는 여전히 그의 말을 반신반의하고 있다.

5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탈리아와 스페인·그리스·키프로스·몰타 등 지중해와 인접한 유럽 남부 5개국 내무장관들은 3~4일 긴급 회의를 열어 식량 난민 대책을 논의했다. 회의 후 5개국 장관들은 유럽연합(EU)을 향해 “EU 회원국이 난민을 분산 수용하는 등 문제 해결을 위해 협력하자”는 성명을 냈다. EU에 사실상 ‘지원 요청’ 신호를 보낸 셈이다.



실제로 올해 들어 이들 5개국에 자리 잡은 아프리카·중동 난민은 3만 6000명을 넘는다. 니코스 누리스 키프로스 내무장관은 “난민 수가 올해 말까지 15만 명으로 불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대규모 식량 난민이 발생한 직접적 원인은 100일 넘게 지속돼온 우크라이나 전쟁과 그로 인한 식량 부족이다. 아프리카는 밀 수입량의 40% 이상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산에 의존하고 있다. 르완다와 탄자니아·세네갈은 그 비중이 60%를 넘고 이집트는 80%에 육박한다. 밀로 만든 빵이 주식인 이들 국가는 전쟁과 러시아에 대한 서방 제재의 여파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서 밀 공급이 끊기자 그야말로 아사 직전의 식량난에 직면했다. 설상가상으로 인도도 밀 수출을 제한하는 등 세계적으로 ‘식량 보호주의’가 확산되는 점도 이 지역의 식량 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구호단체들은 아프리카 북동부 국가에서만 1400만 명 이상이 기아 위기에 처했다고 보는 만큼 난민 수가 예상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사헬 지역에서는 10여 년 만의 흉작까지 겹쳐 1800만 명가량이 기근에 직면한 것으로 파악됐다. 식량난이 지속된다면 이들 중 상당수가 유럽으로 몰려들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집트와 튀니지에서는 식량 가격 인상이 반정부 시위로 이어지며 정정 불안까지 심화해 식량 위기를 기폭제로 제2의 ‘아랍의 봄’이 재연될 우려마저 엿보인다.

이렇듯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연쇄 파장’을 일으키며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이 고조되자 푸틴 대통령은 최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곡물을 운반하는 선박의 운항을 막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간 유지해온 ‘서방이 대(對)러시아 제재를 먼저 풀어야 우크라이나 항구에 묶여 있는 약 2500만 톤 규모의 곡물을 풀겠다’는 입장에서 한발 물러난 모양새다. 여기에는 식량난이 심각한 아프리카연합(AU) 의장국인 세네갈 마키 살 대통령이 전날 러시아를 직접 찾아 3시간 동안 푸틴 대통령을 설득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으로 고립된 러시아가 곡물 수출 협력을 통한 아프리카 세력 포섭을 의식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푸틴 대통령은 이번에도 곡물 수출을 ‘무조건 허용’한 것이 아니라 ‘우크라이나군이 설치한 기뢰를 제거하는 등 선결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그는 또 “가장 간단한 방법은 (인접국인) 벨라루스를 통하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먼저 벨라루스에 대한 제재가 철회돼야 한다고도 했다. 글로벌 식량난이 서방의 제재 때문이라는 기존 주장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러시아의 입장은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 길이 쉽사리 열리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한편 높은 식량 가격은 최빈국뿐 아니라 신흥국의 경제 위기도 자극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러시아를 포함해 멕시코·인도네시아·인도 등 신흥국 소비자물가에서 식료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30% 이상으로 미국(8%), 유럽(10~15%) 등 선진국보다 높다. 식량 가격 상승에 따라 인플레이션이 심해지는 정도가 선진국보다 신흥국에서 훨씬 크다는 의미다. 블룸버그는 “식량 등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비대해진 국가부채를 견디다 못해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선언한 스리랑카의 사례가 다른 신흥국에서도 되풀이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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