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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기술탈취 예방 정부가 적극 나서야

김형배 한국공정거래조정원장





하도급법·상생협력법·부정경쟁방지법에 함께 규정돼 있는 내용은 뭘까. 기술 탈취 행위다.

대기업 원청 사업자로부터 기술을 탈취당해 도산하거나 힘겹게 법적 분쟁을 이어가는 중소기업의 억울한 사정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기술 탈취를 당한 중소기업의 피해 구제는 만만치 않다. 중소기업의 기술 개발 유인도 떨어뜨린다. 중소기업의 기술 혁신으로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술 탈취 행위가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

새 정부가 기술 탈취 근절을 110대 국정과제에 포함한 이유이기도 하다. 구체적 내용은 피해 기업의 입증 지원 강화, 손해액 산정 현실화 등 피해 구제에 중점을 두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실시한 ‘하도급 서면 실태 조사’에 응답한 1817개 수급 사업자 중 27%는 ‘원사업자가 자신의 기술을 정당한 사유 없이 사용하거나 제3자에 제공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2015년부터 운영 중인 ‘하도급 분야 익명제보센터’에 제보된 기술 탈취 건수는 최근 3년간 2건에 불과하다. 이처럼 기술 탈취 행위가 빈번하게 발생하는데도 신고는 손에 꼽을까 말까다. 올 3월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술 탈취 행위 익명제보센터’를 별도로 설치한 이유다. 신고를 주저하는 이유는 보복이 두렵기 때문이다. 하도급 거래의 전속적·수직적 구조로 인해 중소기업은 대기업이 기술 자료를 요구하면 줄 수밖에 없고 뺏기더라도 거래 관계 단절 등 보복이 두려워 신고조차 하지 못한다.

손해배상액 현실화와 입증책임 완화가 기술 탈취 피해 구제에 효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억울한 피해를 당한 중소기업이 신고를 못하는 이유는 되짚어봐야 한다. 손해배상액을 올리고 입증책임을 덜어준다고 해도 기술 탈취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다. 기술 탈취를 당한 중소기업은 거래가 단절된 후에야 도움을 요청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력과 예산의 한계로 사전에 필요한 조치를 제대로 못해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법원에서 이기기는 더더욱 어렵다.

기술 탈취를 당한 후 피해 구제를 도와주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더 필요한 것은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게 스스로 예방하는 것이다. 그래야 부당한 기술 자료 제공 요구를 함부로 하지 못한다. 힘들게 개발한 기술을 뺏기지 않으려면 법령과 판례가 요구하는 보호 장치들을 미리미리 갖추고 챙겨야 한다. 하지만 전문 인력이 없고 돈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이게 만만치 않다. 기술 자료가 무엇인지,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부당한 요구 행위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등 내용과 방법 및 절차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따라서 부당한 기술 자료 요구에 제대로 대응하고 제공 후에는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정부가 나서서 도와줘야 한다. 피해 예방 교육을 강화하고 필요한 시스템 구축을 지원해야 하며 현장 상담 기능도 활성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부족한 전문 인력을 보강해야 하고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관리를 위한 전담 조직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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