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은 자신이 투자한 회사 경영진들에게 편지 한 통을 보냈다. 핑크는 연례 서한에서 “기후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실적을 공개하지 않으면 투자금도 회수할 수 있다”고 못박았다. 그의 편지는 ESG 경영을 글로벌 기업들의 화두로 만들었고 산업계 전반에 새로운 투자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그에게는 ‘ESG 경영의 아버지’라는 별명이 따라붙었다.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난 핑크는 미국 UCLA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뒤 UCLA 앤더슨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MBA)를 취득했다. 그는 1976년 월가 투자은행 퍼스트보스턴에서 채권 트레이더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최연소 전무를 지내는 등 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하지만 채권 투자 과정에서 1억 달러의 손실을 초래하는 바람에 중도 퇴사했다. 핑크는 1988년 동료 7명과 함께 투자회사 블랙스톤 산하에 ‘블랙스톤금융관리’라는 자회사를 세웠다. 1992년에는 블랙스톤으로부터 분사해 ‘검은 바위’라는 의미의 블랙록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이후 2008년 금융위기 과정에서 메릴린치와 바클레이즈의 자산운용 부문을 잇따라 인수해 덩치를 키웠다. 그가 움직이는 운용 자산은 10조 달러(약 1경 2000조 원)에 달하고 있다.
핑크는 미국의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재무장관 단골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경제·금융 정책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는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초대 재무장관으로 물망에 올랐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그를 ‘세계 경제를 주무르는 그림자 은행(shadow bank)의 총재’라고 부르는 이유다.
핑크가 최근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글로벌 공급망 병목현상으로 수년간 인플레이션이 지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공급망 위기에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겹쳐 인플레이션 공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우리도 세금 감면과 수입선 다변화 등 비상 플랜 가동을 넘어 구조 개혁을 통해 근본적인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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