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파티 게이트’로 사임 위기에 내몰렸던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6일(현지 시간) 진행된 불신임 투표에서 가까스로 승리하며 일단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현지 언론과 외신들은 벌써 그의 자진 사퇴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이번 불신임 투표로 리더십에 큰 흠집이 난 데다 40년 만에 닥친 최악의 인플레이션 등 경제난으로 이미 잃은 민심을 다시 얻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일각에서는 23일 치러질 보궐선거에서 보수당이 패할 경우 존슨 총리가 또다시 낙마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존슨 총리는 이날 보수당 하원의원 불신임 투표에서 신임 211표(59%)로 절반(180표) 이상의 지지를 얻어 보수당 대표직과 총리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블룸버그통신은 존슨 총리가 투표 직전 보수당 의원들에게 내놓은 호소 전략이 일단 효과를 발휘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우리는 40여 년 만에 가장 큰 보수당의 승리를 함께 일궜다. 지금은 미래를 위해 단결해야 할 때”라며 2019년 7월 조기 총선에서 압승한 경험을 상기시키며 지지를 호소했다. 당시 승리는 1987년 마거릿 대처 전 총리 이후 보수당이 거둔 최대 승리로 기록된 바 있다.
외신들은 총리직 유지보다 148표(41%)의 불신임표에 더 주목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당내 40% 이상이 그의 퇴진을 요구했다는 것은 (존슨 총리의) 입지가 그만큼 좁아졌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존슨 총리가 얻은 불신임표가 전임자인 테리사 메이 전 총리(37%)가 받은 것보다 높다는 점도 주목됐다.
민심 이반은 당내 여론보다 더욱 심각하다. 최근 여론조사 업체 입소스의 조사에 따르면 ‘존슨 총리가 국정 운영을 잘 하지 못하고 있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는 54%에 달했다. 올 4월 영국 소비자물가 상승률(9%)이 1982년 이후 40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할 정도로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여론 악화의 주원인이다. 영국의 5월 소매판매는 전년 동월 대비 1.1% 감소했는데 이는 전월인 4월의 감소 폭(0.3%)보다 크게 늘어난 것이다. 물가가 오르자 영국 경제를 떠받치는 소비가 크게 위축됐다는 의미다.
이에 존슨 총리가 결국 자진 사퇴했던 메이 전 총리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관측이 상당수 제기됐다. 보수당 당규에 따르면 불신임 투표에서 신임을 얻은 총리는 향후 1년간 자리가 보장된다. 그러나 메이 전 총리는 브렉시트 협상 난항을 이유로 치러진 불신임 투표에서 승리한 후 불과 6개월 만에 정치적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난 바 있다. 존슨 총리의 ‘낙마’ 불씨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의미다.
외신들은 23일로 예정된 보궐선거에서 보수당이 패할 경우 존슨 총리에 대한 사퇴 압박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내다봤다. 선거 판세도 보수당에 유리하지 않다. 이번에 2개 지역구(웨스트요크셔·데번)에서 보궐선거가 치러지는 것은 기존 보수당 의원들이 성 추문에 휩싸여 불명예 퇴진한 탓이기 때문이다. 니콜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트위터에 “존슨 총리가 레임덕에 빠졌다는 점은 분명하다”며 “우크라이나 전쟁 등 국제 정세가 급변하는 가운데 레임덕에 빠진 총리가 영국을 이끌게 됐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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