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993년 6월 7일 “마누라·자식 빼고 다 바꾸라”며 ‘신경영 선언’을 한 지 29년이 흘렀다. 삼성은 선언 이후 대대적인 체질 개선으로 글로벌 초우량 기업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요즘 삼성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일본 닛케이가 연이어 삼성 위기론을 보도한 데 이어 입사 5년 차 반도체 엔지니어가 “어느 때보다 지금이 위태롭게 여겨진다”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직언할 정도이다. 이 부회장은 반도체 부문 대규모 인사로 쇄신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이 부회장은 신경영 선언이 나온 날 부모를 넘어선다는 뜻의 ‘승어부(勝於父)’ 부담을 안고 유럽으로 떠났다. 네덜란드 ASML을 찾아 반도체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 수급을 푸는 것이 급하지만 더 중요한 과제는 그룹의 신수종 사업 발굴이다. 삼성은 새 먹거리 찾기에 본격 나섰지만 메모리 반도체 의존도는 외려 커지고 있다. 스마트폰, TV·가전 등 반도체 외 사업의 올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줄어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위기를 타개하는 방법은 기술 초격차를 유지하고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반도체 기업 간의 대형 인수합병(M&A)은 절실하다. 이 부회장이 ‘5년간 450조 원 투자 계획’에 대해 “목숨 걸고 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은 삼성의 위기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천문학적 규모의 투자 경쟁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눈 깜짝하는 사이에 절멸하는 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국제노동기구(ILO) 총회 연설에서 “기업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 제고를 위해 선순환 경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속 가능한 성장과 고용의 발전적 사이클을 만들려면 기업들은 신수종 사업을 서둘러 찾아 적극 투자하고 정부는 인재 육성, 규제 혁파, 노동·세제 개혁 등 전방위 대책으로 밀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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