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임 시절 러시아에 친화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가 7일(현지 시간) “나의 외교정책은 정당했다”며 “현 사태에 대해 자책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소모전 형태로 길어지며 과거 독일의 온건한 대러 정책에 대한 책임론이 일자 해명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메르켈 전 총리는 이날 베를린 도심의 한 극장에서 열린 자신의 연설문 모음집 출간 기념 대담 행사에서 “외교가 성공하지 못했다고 틀린 것은 아니니 사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메르켈 전 총리의 지난해 12월 8일 퇴임 이후 첫 외부 대담 일정이다.
메르켈 전 총리는 16년의 임기 동안 60차례 가까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며 서방과 러시아의 관계에서 중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메르켈 전 총리는 2008년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반대한 사실이나 2014년 크름반도 강제 합병 당시 대러 제재에 소극적이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2015년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에서 정부군과 친러반군 간의 전쟁을 중재했던 ‘민스크 협정’의 실효성이 부족했다는 점과 노르트스트림 2 가스관 사업을 추진했던 점도 도마 위에 올랐다.
메르켈 전 총리는 “무엇인가를 놓친 것은 아닌지 계속 자문했다”며 “충분히 노력했지만 성공하지 못해 매우 유감”이라고 말했다. 특히 14년 전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반대한 일에 대해 “당시 우크라이나는 내부 부패와 정치적 분열로 가입 조건을 갖추지 못한 상황이었다”며 “가입 절차가 일찍 진행됐다면 러시아의 침공도 앞당겨졌을 것이고 우크라이나는 힘을 기르지 못한 상태에서 더욱 큰 피해를 당했을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다만 메르켈 총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용납할 수 없다. 중대한 실수이자 노골적인 국제법 위반”이라고 비난하며 “야만적인 침략 전쟁을 끝내기 위한 유럽연합(EU)과 미국·나토·유엔의 모든 노력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한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교착 상태는 우리 선택지에 없다”며 정전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영토 완전 탈환’이라는 목표를 위해 격전을 이어가겠다는 의미다. 현재 러시아군은 세베로도네츠크 등 돈바스 전선에서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날 세계은행도 전쟁 장기화를 예상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14억 9000만 달러(약 1조 8700억 원) 규모의 추가 자금 조달을 승인하며 국가지원자금 총액이 40억 달러를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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