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실재한다’는 아방가르드 예술에 관한 영화입니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페르소나, 비고 모텐슨(63)이 연기한 사울 텐서는 무대에서 라이브 퍼포먼스로 제거되는 인체의 장기를 생성하는 행위예술가다. 자신의 신체기관까지 관객에게 바치는 사울 텐서는 부검 침대에 누워 공개적으로 장기를 적출 당한다. 파트너인 카프리스(레아 세이두)가 원격 조종하는 수술 로봇이 아방가르드 퍼포먼스를 벌이는데 보기는 불편해도 묘하게 시선을 떼지 못하게 한다.
‘크라임스 오브 더 퓨처’는 비고 모텐슨이 크로넨버그 감독과 함께 한 4번째 작품이다. 지난달 프랑스 칸에서 월드 프리미어가 끝난 후 대화의 시간을 가진 그는 “8년 만에 감독으로 돌아온 크로넨버그의 괴이한 바디 호러가 진화했음을 보여준 영화”라며 첫 출연작 ‘폭력의 역사’(2005)와는 궤를 달리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오래 전 그가 선보인 ‘미래의 범죄’(Crimes of the Future·1970)를 떠올리겠지만 아무런 관련이 없는 영화다. 크로넨버그 감독은 그냥 그 제목을 좋아했고 재차 사용하고 싶어했다. 사실 이 영화에 딱 맞는 제목”이라고 덧붙였다.
수술을 새로운 섹스로 인식하게 만드는 에로스 장면은 비고 모텐슨과 레아 세이두의 상상력으로 탄생했다. 그는 “칼날을 작동시키는 기기를 어떻게 조작해야할까 등 실재하지 않던 모든 행위를 레아와 함께 고민했다. 언어와 촉각, 물리적 방법으로 이 모두를 작동시키며 일관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두 사람의 몸을 칼날로 베거나 창자와 장기를 보여주는 장면은 딱 한 번의 촬영 밖에 허용되지 않았다. ‘과연 얼마나 보여줄까’ 고심했다는 그는 “레아의 창의성이 더해져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 됐다. 유머 있고 장난꾸러기인 그녀는 크로넨버그 감독이 원한 완벽한 배우였다”고 밝혔다. 그는 또 “영화 촬영 내내 감독이 알아듣지 못할 말로 중얼거리던 문구가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살기 원한다면 죽음을 준비하라’는 인용구임을 알았다. 그제서야 사울 텐서를 이해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모텐슨이 크로넨버그 감독을 처음 만난 것은 2004년이었다. 피터 잭슨 감독의 3부작 ‘반지의 제왕’ 아라곤으로 거대한 팬덤을 구축한 시기였고 마지막 편 ‘왕의 귀환’ 개봉 일년 후였다. “‘폭력의 역사’ 출연 제의를 받았는데 시나리오가 형편없었다. 하지만 그의 유머에 반해 톰 스톨 배역을 수락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크로넨버그 감독은 과다하게 설명하는 걸 좋아하지 않고 리허설도 하지 않는다. 스토리보드는 당연히 없고 촬영장에 도착하면 배우들을 지켜보기만 한다”고 말한 그는 “알고 지낸지 18년이 넘었는데 그의 영화가 기술적으로 더 세련돼졌더라. 영화제작의 도구라는 측면보다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필요로 하는지 구체적으로 정확히 알고 있었다”고 감탄했다.
프로이트의 ‘쾌락 원칙을 넘어서’를 떠올리게 한 영화 ‘크라임스 오브 더 퓨처’는 타나토스(죽음 충동)가 갖고 있는 두 가지 본능, 에로스와 파괴충동을 담았다. 여기에 미세 플라스틱을 먹고 소화시키는 인간의 진화가 또 다른 축을 이룬다. 상영시간 107분 중 마지막 20분은 극장에 앉아 버티기 매우 힘든 시간이라는 감독의 경고도 있다./ 하은선 미주한국일보 부국장, HFPA 회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