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강동원이 영화를 대하는 자세는 여유가 가득하다. 영화를 사랑하고 연기를 사랑하며 산 20년의 세월 덕분이다. 그런 여유는 세계적인 거장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의 작업에서 빛났다.
두 사람이 함께 작업한 영화 ‘브로커’는 제75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해 에큐메니컬상을 수상했다. 베이비 박스에 아이를 놓고 간 엄마 소영(이지은)과 몰래 그 아이를 팔려고 한 상현(송강호)과 동수(강동원)가 만나 펼친 특별한 여정이 담긴 이 이야기는 칸 영화제 관객들의 가슴을 울리며 12분 동안이나 기립박수를 이끌어 냈다.
강동원은 “처음엔 좋다가 나중엔 뻘쭘했다. 지은 씨가 옆에 있었는데 ‘우리 언제 가냐’고 했다”고 영광의 순간을 회상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감독님이 (박수를) 스톱시켰다. 앞에 있는 분들과 너무 가까이 있는데 우리를 계속 보면서 박수를 쳤다”며 “10분 넘게 있으니까 모르는 사람인데 뻘쭘하더라. 근데 뭔가 정말 기분은 좋았다”고 덧붙였다.
칸 영화제 초청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년 전 영화 ‘반도’(감독 연상호)로 칸 영화제에 방문한 바 있지만 경쟁 부문작이 아니었다. 친분이 있는 크리스티안 부집행위원장과 이번 칸 영화제에서 만나 ‘드디어 왔구나’라는 이야기를 듣는 것도 감회가 새로웠다.
12년 전 영화 ‘의형제’에 이어 다시 호흡을 맞춘 송강호는 ‘브로커’로 칸 영화제에서 한국 남자 배우 최초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강동원도 예상한 결과였다. 칸 영화제를 갔다는 것 자체로 영광인데, 동고동락한 선배 배우 송강호까지 트로피를 품에 안으니 더 영광이었다.
“(송)강호 선배님과는 ‘축하합니다’ 정도로만 인사했어요. 선배님이 아직 수상 턱을 쏘지 않았거든요. 그럴 시간도 없었고요. 이제 (턱을 쏘라고) 얘기해야겠어요. 선배님이 편식을 하셔서 메뉴는 선배님이 좋아하시는 걸로 하면 될 거 같아요. 하지만 좋은 식당에서 쏘시면 좋겠네요.”(웃음)
송강호와의 작업은 늘 즐겁다. 현장에서 둘이 수다를 떠는 것이 일상이다. 주로 영화 전반에 대한 이야기가 주제 거리다. ‘의형제’ 현장에서는 촬영이 끝나면 무조건 모텔방에 모여 맥주와 황태를 두고 수다꽃을 피웠다. ‘브로커’ 현장은 코로나 팬데믹 시기라 자주 모이지 못한 것이 아쉽다.
반면 이지은(아이유)과는 어색한 사이다. 이지은에게 ‘브로커’가 첫 상업영화이긴 하지만 후배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정말 잘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보육원 출신인 동수가 ‘다시 데리러 오겠다’는 쪽지만 남기고 아기를 놔두고 가버린 소영에게 자신의 어머니를 투영하기도 하고, 두 사람이 조금씩 가까워지며 미묘한 러브라인을 형성하는 것 등 극 중 중요한 관계였던 이지은과 호흡도 좋았다.
“(이지은과) 말을 많이 하지 않았어요. 지은 씨가 촬영 끝날 때쯤 한 번 처음으로 제게 말을 걸었거든요. 대기할 때 갑자기 말을 걸어서 놀랐죠. 물어볼 게 있어서 저를 부른 거더라고요. 저희는 차 뒤쪽에서 자주 같이 앉아있었는데 아기를 보느라 바빴어요. 또 공통된 대화 주제를 찾지도 못했고요. 지은 씨는 조용하고 얌전하게 있었어요. 저랑 강호 선배님만 계속 수다를 떨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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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과 함께한 관람차 신은 가장 긴장되는 신이었다. 해 질 녘 관람차 안에서 20분이라는 촉박한 시간 내에 촬영을 끝냈어야 했다. 고레에다 감독과 다른 스태프 없이 홍경표 촬영감독만 탑승할 수 있는 좁은 공간이기도 했다. NG가 있어서는 안 되는 순간이었지만, 이지은의 눈물이 떨어지기 직전에 손으로 눈을 가려야 하는 타이밍까지 계산하다가 결국 대사 NG를 내버려 재촬영을 했다.
“이 신은 담담하게 하는 게 목표였어요. 원래는 모자이크 설정이었는데 아닌 것 같아서 ‘빼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다가 (이 신을) 꼭 하고 싶어서 감독님께 눈물이 날 때 가리는 걸로 하면 될 것 같다고 했죠. 지은씨는 그것도 몰랐을 거예요.”(웃음)
‘브로커’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흐름이 그렇듯, 동수 캐릭터 또한 잔잔하다. 큰 감정의 기복 없이 고요해 섬세한 연기가 필요하다. 강동원 역시 이런 잔잔한 캐릭터를 연기할 때마다 감정 표현에 의문을 가진 적이 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이제 20년의 경험에 다 맡긴다”는 그였다.
“(동수에게 보이는 소년미는) 제가 아직 철이 없어서 그런가 봐요. 동수는 그런 성격일 거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연기했어요. 아직도 (제게) 소년 같은 게 남아있기도 하고요. 아저씨가 다 됐지만 그런 게 남아있어요. 반면 성숙하기도 했고, 여유도 많이 생겼죠.”
동수를 연기하기 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실제로 보육원 생활을 한 이들의 마음이다. 함부로 짐작해서 연기할 수 없기에 직접 그들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동수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과정이었다.
“제가 편견이 있었던 건 보육원에서 다 함께 자라면 오히려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보다 친구도 많고 형제도 많지 않을까 했던 거였어요. 그게 마냥 행복한 건 아니지만 정이 드니까 같이 있고 싶어 하지 않을까 짐작한 거죠.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다들 입양 가고 싶어한다고 하더라고요.”
“하이라이트는 ‘태어나줘서 고마워’ 대사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쓸쓸하고 슬프고 기쁘기도 했죠. 실제로 보육원 원장님과 보육원 출신 분이 와서 ‘그 말을 듣고 너무 눈물이 났다’고 하더라고요. 제 연기를 칭찬하는 평이 기억에 남는데, 보육원 친구가 영화를 보고 이야기했을 때 가장 보람찼어요. 그걸 위해서 연기를 한 거니까요.”([인터뷰②]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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