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님들께 주택담보인정비율(LTV) 100%까지 이주비 제공합니다.’
‘대출 규제 걸린 고가 주택도 이주비 받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주요 정비사업의 시공사 선정 총회를 앞두고 건설사들의 조합원 대상 홍보전에 흔히 등장하는 문구다. 하지만 12월 10일부터 개정된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이 시행되면 이 같은 관행이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에서는 시공사가 수주를 위해 조합에 남발했던 무리한 약속이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와 거주민의 이주가 늦어져 사업 동력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동시에 흘러나온다.
14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이달 10일 공포돼 6개월 뒤 시행되는 도정법 개정안은 ‘정비사업의 투명화’에 초점을 맞췄다. 개정안에 신설된 제132조 2항은 건설사(또는 등록사업자)가 조합과 시공 계약을 체결할 때 시공과 관련 없는 사항에 대한 금전이나 재산상 이익을 제공하는 것을 금지한다. 또 시공사가 조합원을 대신해 재건축초과이익 환수에 따른 재건축 부담금을 대납하는 것도 제한했다. 건설사가 이를 위반할 경우 최대 1000만 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된다.
과거 정비사업 수주전에 참여한 시공사들은 조합에 다양한 특혜를 약속해왔다. 앞서 4월 포스코건설이 서울 동작구 노량진3구역 시공사 선정 총회에서 신용공여를 통해 LTV 100% 대출 지원을 약속한 사례가 보도되기도 했다. 또 2020년에는 삼성물산이 대우건설과 서울 서초구 반포3주구 시공권을 두고 경쟁하며 각종 민원 해결을 지원하는 명목으로 이주비 성격의 사업 활성화비로 1조 6400억 원을 배정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이 같은 약속은 불법 논란에도 실제 처벌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조합에 시공과 무관한 금전적 이익을 제안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규정이 도정법이 아닌 정비사업 계약 업무 처리 기준(국토부 고시 제30조)에 있어 형사처벌이나 행정처분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0년 도정법 위반 및 입찰 방해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은 현대건설·GS건설·대림산업이 최종 무혐의로 결론난 것도 처벌 근거가 부족해서였다. 국토부는 이를 감안해 개정안을 내놓았고 현재 입법 예고 준비 단계이다.
정비 업계는 도정법 개정안이 재건축·재개발 수주전의 양상을 크게 바꿔 놓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간 핵심 입지의 정비사업을 둘러싼 건설사들의 출혈 경쟁이 단박에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 다만 조합원을 설득할 수 있는 ‘비장의 무기’가 사라져 각 시공사의 주택 브랜드 선호도가 수주전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반면 업계 일각에서는 사업 수익성을 쥐고 있는 이주비, 이주 촉진비 등이 법으로 금지되면 사업 동력이 크게 떨어지고 결국 주택 공급 물량도 감소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건설사 관계자는 “조합이 사업비를 마련할 재원은 일반분양밖에 없는데 일반분양은 이주가 마무리 돼야 진행할 수 있다”며 “최근 전월세 비용이 크게 올라 정비 구역 내 거주하던 조합원과 임차인이 LTV 40% 범위 내에서 마땅한 주거지를 찾을 수 없어 골치 아픈데 법이 시행되면 정비사업 여러 곳이 엎어지는 것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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