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총을 한 번 잡아본 적 없는 스무살 사샤 그리고리바가 이젠 신병에게 사격을 가르치고 있다는 사연이 알려졌다.
사샤는 입소 직후 2주간 훈련을 받을 때 총을 분해, 조립하는 속도가 다른 동기들보다 월등히 빠르고, 목표물을 모두 명중시켜 '특등 사수'로도 불렸다. 이를 눈여겨본 군이 그를 사격 조교로 발탁했다.
사샤가 밝힌 사격 비결은 소셜미디어(SNS)였다. 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월 24일(현지시간) 이후 틱톡과 유튜브 등 SNS에 올라온 영상을 보면서 머릿속으로 총쏘는 장면을 수백 번 '시뮬레이션'한 것이 효과가 있다고 했다.
사샤는 러시아와 교전이 치열한 동부 지역에 가려는 청년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고 밝혔다. 그는 "동생같은 10대 청소년까지 최전선에서 싸우고 싶다며 동부 돈바스로 향할 때는 '과연 이 친구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싶어 가슴 한쪽이 저립니다”라고 했다.
올해 스무 살인 사샤의 얼굴에는 아직 소녀티가 남아있었다. 그는 댄스 강사, 셰프, 타투이스트 등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 2017년부터 K-팝에 빠져들기 시작했다는 사샤는 입대 전 식당에서 요리하며 돈을 벌면서 틈틈이 아이들에게 춤을 가르치는 강사 일도 겸했다고 한다.
하지만 입대를 결심하면서 모든 꿈은 전쟁 뒤로 미뤄졌다. 군복을 입게 된 계기는 간단했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곳곳에서 죽어 나가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는 것이다. 그는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주변과 주변에 상의도 하지 않고 입대 지원서를 냈어요. 나를 지키고, 가족을 지키고, 국가를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입대조차 쉽지 않았다. 러시아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에서는 군에 자발적으로 입대하겠다는 사람이 몰려 입영 가능한 부대가 없을 정도였지만, 수소문 끝에 갈 곳을 찾았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딸이 전쟁 중인 군대에 간다는 소식을 들은 그의 어머니는 만류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사샤의 뜻을 꺾지 못했다.
사샤가 군생활에서 가장 힘들다고 밝힌 것은 "아는 사람이 전쟁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였다. 사샤는 이번 전쟁으로 친구 2명을 떠나보냈다. 그는 "소중했던 사람과 영원히 작별하는 것만으로도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인데 장례식장에서 가족을 보면 여러 감정이 솟구쳐올라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고 심경을 전했다.
전쟁이 끝나는 날이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전쟁이 어떻게 끝나야 하는가에 대한 그의 대답은 확고했다.
"이 전쟁은 우크라이나가 승리해야 비로소 멈출 거예요. 러시아는 그렇게 넓은 땅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서 왜 우리 땅을 빼앗으려 하는지 모르겠어요. 우리는 끝까지 이기겠다는 믿음 하나로 싸우고 있습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