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 '브로커' 만난 아이유, 배우 이지은이 되다 이어서…
아무리 많은 경험을 해 본 이지은이라도 첫 영화 현장은 긴장되는 것 투성이었다. 실수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온몸을 얼어붙게 했다. 신기하게도 상대 배우 송강호, 강동원과 연기할 때만큼은 모든 것이 사르르 녹았다. 이미 작품 속 캐릭터와 동화된 그들 앞에서는 굳이 많은 걸 표현하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나왔다.
“송강호 선배님과 연기하는 신은 진짜 신기했어요. 선배님과 마주하는 신을 하기 전에는 정말 떨리거든요. 그런데 슛을 하면 안 떨려요. 그건 선배님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몰입되고 집중되게 만들어주시죠. 영화를 볼 때 1년 전의 기억이니까 ‘내가 저 때 편하게 했다’ 싶은데 그럴 때마다 송강호 선배님이 있더라고요. 모든 경험이 신기하고 아직까지 제가 겪은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아요.”
강동원은 보면 볼수록 신기한 존재다.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봤지만 남다른 아우라가 느껴진다. 하지만 연기할 때는 다르다. 슛이 들어가면 강동원이 아닌 동수가 눈앞에 있다. 빛나는 외모에 눈이 가기보다 강동원이 연기하는 개연성 있는 인물에 빠져든다.
“소영이 동수와 싸우고 속 깊은 이야기를 처음 나누고 관람차 신이 나오잖아요. 그때가 두 사람의 관계 변화 지점인데 (강동원) 선배님이기 때문에 납득이 가는 순간이에요. 강동원 선배님은 특유의 선한 기운이 있어요. 작위적인 느낌이 없죠. 강동원 선배님이 동수여서 제가 참 많이 덕을 봤다고 생각했어요.”
당찬 스타일의 이지은도 촬영장 안에서는 말을 아꼈다. 송강호, 강동원과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눠보지 못했을 정도. 이미 막역한 사이인 송강호, 강동원과 배두나가 분위기를 주도하며 화기애애하게 만들 때 그는 항상 긴장하고 있었다고.
“현장의 즐거운 분위기에 취했다가 제 역할을 못 하게 되는 최악의 상상을 했어요. 그래서 제가 막내이고 가장 신인이라 잘 해야 하는데 싹싹하게 못했어요. 조금 절 밉게 보셨어도 그럴만하다고 생각했어요. 거기에 대한 걱정도 없지 않았고요. 그런데 ‘그게 아니셨구나. 나 예뻐하시네’라고 느낄 때마다 감동의 연속이었죠.”
“(송강호, 강동원과의 호흡이) 남은 운을 다 끌어쓰는 수준으로 대단한 일이라는 걸 알거든요. 칸에서도 ‘조심해야지. 실수하지 말아야지’라고 노심초사했어요. 선배님들과는 이제야 감사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사이가 됐어요. 칸 다녀오고 나서 많이 가까워져서 ‘이건 정말 감사했다. 말씀을 많이 못 드렸다’고 했어요.”
긴장의 연속으로 작품을 끝내고 연기에 대한 걱정도 계속됐다. 칸 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완성본을 보고 나서야 안심했다. 고레에다 감독의 연출이 덧입혀지면서 마법처럼 자연스러워진 것. 걱정했던 신들이 지나갈 때마다 더 좋게 나왔다는 생각뿐이었다.
관련기사
“첫 데뷔작이니까 오래오래 기억이 남을 것 같아요. 촬영하는 내내 ‘모든 현장이 이렇게 엄격하기 힘들다’는 말을 들었어요. 이걸 디폴트로 생각하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초심자의 행운같이 제가 첫 작품으로 ‘브로커’에 참여하면서 받은 배려나 행운 같은 걸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혹시라도 내 운의 전부일 거라고 생각해도 너무 크고 좋은 운이어서 경험해 본 것만으로도 좋았어요. 진심으로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런 운을 받았던 사람이니까 훨씬 더 잘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영화계에서 배우 이지은은 신인이지만, 가요계의 아이유는 톱이다. 그런 그가 수년째 양쪽을 오가는 것은 음악과 연기가 닿아있는 부분이 있어서다. 서로 다른 매력 때문에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둘 다 어려울 때는 괴롭게 어렵고, 재밌을 때는 눈이 돌게 재밌어요. 저는 녹음실에서 가장 공을 들이거든요. 테이크를 비교할 수 있고 현장에서 피드백을 들을 수 있다는 게 가장 신나요. 기회가 여러 번 주어진다는 점이 좋아요. 현장에서 연기할 때도 녹음실과 비슷한 부분이 있더라고요. 다만 혼자 프로듀싱하는데 외로운 순간이 꼭 있어요. 현장에서는 서로에 대한 책임감이 느껴지고 소속감이 느껴지는 게 좋아요. 주어진 가이드라인이 있고 주변 스태프들이 있으니까 제가 좀 더 집중할 수 있고요.”
이지은은 벌써 연기를 한 지도 11년째이지만,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배우로서 각인된 것은 드라마 ‘나의 아저씨’부터다. 대중이 기억하는 발랄한 소녀 아이유와 상반되는 분위기의 작품이 도화선이 된 건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고레에다 감독도 ‘나의 아저씨’를 보고 비슷한 결의 소영 역을 그에게 맡긴 것처럼.
“제가 초반에 내세웠던 이미지는 밝고 명랑한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옛날 노래를 할 때마다 슬픈 일이 있었냐고 질문을 많이 하세요. 제가 이 노래로 표현해야 하는 게 슬픔인지 외로움인지 쓸쓸함인지 분류할 수 없는 어릴 때 시작했으니까 그런 부분을 눈여겨보는 것 같아요. 이 연예인의 뒷면에 있는 얼굴이라고 생각해서 끌어올리고 싶은 것 같아요.”
연달아 어둡고 자기방어적인 역할을 하면서 다른 스타일의 캐릭터도 하고 싶어졌다. 좀 더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는 일상적인 캐릭터다. 차기작인 이병헌 감독의 ‘드림’은 코미디 영화이고 밝고 일상적인 모습이 많이 담겨 새로운 모습을 기대해 볼 만하다.
“연기는 재밌고, 어렵고, 생각할 동력을 줘서 좋아요. 절대로 나로만 살면 건드려지지 않는 부분이 있거든요. 소영을 연기하기 전까지 미혼모, 엄마, 보육 시설 아이들의 마음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본 날이 없었던 것처럼. 나로만 살면 관성대로 살게 돼요. 잠깐이라도 다른 인물을 생각하게 되니까 그 인물의 삶을 유추하고, 원래의 나라면 생각하지 못했던 점을 생각해서 좋아요.”(웃음)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