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해외 칼럼] 서브 프라임 위기와 암호화폐 붕괴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합법적 자산가치 없는 암호화폐

4弗당 1弗은 사기 거래에 악용

‘거품에 베팅’ 이미 14년전 실패

더이상 ‘빅 스캠’에 속지 말아야





‘빅 쇼트’를 기억하는가. 마이클 루이스가 2010년에 발표한 소설 빅 쇼트는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에서 떼돈을 번 투자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2015년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뜨거운 화제를 불러 모았다. 2008년도 금융위기가 닥치기 직전까지 수년간 이어진 주택 가격 상승이 거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아챈 작품 속의 투자자들은 미국 경제의 위기로 이어질 주택 시장 거품 붕괴에 베팅해 천문학적인 투자 수익을 올린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정교한 듯 보이는 파생 금융 상품들이 쓸모없는 쓰레기였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거품에 베팅하는 투자자들이 극소수에 불과한 이유가 뭘까. 주택 가격이 선을 넘었다는 분명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6조 달러에 달하는 부동산 자산이 증발하거나 모기지담보증권(MBS) 투자자들이 1조 달러의 손실을 볼 만큼 주택 시장에 거품이 끼었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시장이 그 정도로 심하게 망가질 리 없다는 통념이 굳건하게 자리를 지킨 탓이다.

하지만 암호화폐의 현주소가 보여주듯 시장은 얼마든지 망가질 수 있다. 지난주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암호화폐가 사기꾼들이 선호하는 결제 방식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FTC 보고서에 따르면 암호화폐로 이뤄지는 대금 결제 가운데 4달러당 1달러가 사기 거래에 사용된다. 일반적인 거래에서 암호화폐가 차지하는 역할이 작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놀랄 만한 현상이다.

사실 FTC가 공개한 암호화폐 사기 거래의 전체 규모는 2021년 이후 총 10억 달러 정도로 그렇게 많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FTC가 밝힌 수치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자산 구입에 피해자들이 지불한 대가만을 집계한 것이다. 물론 사기를 당하고도 신고조차 하지 않은 피해자들은 집계에서 누락됐다. 지난달 테라USD의 붕괴로 180억 달러의 자산 가치가 증발했고 숱한 사람들이 평생 모은 돈을 날려버렸다. 테라USD 창업자들은 그들이 만든 상품의 가치를 믿었고 투자자들의 돈을 훔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법적인 의미에서 사기극을 벌인 것은 아니지만 어쨌건 투자자들은 어마어마한 금전적 손실을 봤다.

많은 애널리스트가 지적하듯 스테이블 코인은 첨단 기술에 바탕을 둔 미래형 통화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제로는 규제를 받지 않는 민간 은행들이 유가 지폐를 찍어내던 남북전쟁 이전 19세기 ‘자유 은행 시대’의 미국 은행과 흡사하다. 당시 상당수 은행이 사기로 인해 도산했지만 대부분은 잘못된 투자로 무너졌다.

요즈음의 일부 경제 전문가들은 자유 은행 시대를 두둔한다. 가장 열렬한 자유 은행 지지자들은 환경문제를 부인하고 코로나19 대응 조치에 반대하는 우익 싱크탱크와 연결돼 있다. 어쨌건 자유 은행 시대에는 여러 개의 사설 통화가 실제로 유통됐고 교환 수단으로 기능했다.



하지만 그건 분명 더 나은 대체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미국 재무부가 발행하는 달러화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달러화와 정부 보험 가입 예금이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에 일상적 비즈니스 거래에서 스테이블 코인이 담당하는 역할이 거의 없다. 그렇다면 스테이블 코인이 필요한 이유가 뭘까.

동일한 질문의 범위를 암호화폐 전체로 확대할 수 있다. 필자가 참석한 많은 모임에서 암호화폐 회의론자들은 지지자들을 향해 기존의 결제 수단보다 암호화폐로 더욱 간편하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냐고 질문했다. 또한 암호화폐가 미래의 교환 수단이라면 2009년에 도입된 비트코인이 아직도 현실 세계에서 널리 사용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도 나왔다. 그러나 그때마다 돌아온 답변은 영양가 없는 말의 ‘샐러드’였다. 그렇다면 암호화폐의 합법적인 활용 사례가 있기는 한가.

상황이 이런데도 암호화폐가 의미가 없다는 주장은 도통 먹히지 않는다. 지난해 11월 정점에 도달했을 당시 전체 암호화폐의 합산 가치는 3조 달러에 달했고 초기 투자자들은 막대한 이득을 챙겼다. 유명 경영대학들이 앞다퉈 블록체인 과목을 신설하는가 하면 시장들은 저마다 그들의 도시를 암호화폐 친화적으로 만들려고 열띤 경쟁을 벌였다.

이처럼 가치가 엄청나게 불어나면서 운용자들에게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제공한 암호화폐 자산군(asset class)이 실질 가치를 결여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 이들은 모래 위에 지은 집이 아니라 허공에 지은 누각이다.

필자는 주택 거품과 서브 프라임 위기를 똑똑히 기억한다. 우리는 주택 거품 붕괴에 베팅한 ‘빅 쇼트’에서 대형 사기인 ‘빅 스캠’으로 이동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