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증거 중심의 인권 친화적 수사를 표방하지만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의 반인권적 수사 관행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정책·제도만으로는 인권보호가 제대로 실현되기 어렵다며 엄정한 처벌은 물론 수사기관을 상대로한 예방 교육 강화가 병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19일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수사기관이 독직폭행, 가혹행위 혐의로 기소된 건수는 9건으로 집계됐다. 2020년 4건 대비 약 2배, 2019년 1건 대비로는 무려 9배가 급증했다. 2018년에는 3건이었다.
독직폭행은 공무원의 직무를 이용한 폭행이다. 형법 제125조는 “재판, 검찰, 경찰 그 밖에 인신구속에 관한 직무를 수행하는 자 또는 이를 보조하는 자가 직무를 수행하면서 형사피의자나 그 밖의 사람에 대하여 폭행 또는 가혹행위를 한 경우에는 5년 이하의 징역과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정진웅 광주지검 차장검사(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가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일 때 ‘검언유착 사건’에 연루된 한동훈 검사장(현 법무부 장관)의 휴대전화 유심칩 압수수색 과정에서 독직폭행 혐의로 기소된 사례가 있다.
그동안 수사기관의 반인권적 수사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2002년 10월 피의자가 서울지검 강력부 수사팀에게 물고문, 가혹행위를 당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는 등 민주화 이후에도 반인권 수사가 계속됐기 때문이다.
독직폭행과 가혹행위 피해를 호소하는 사례가 연 평균 1000건에 달하는데도 처벌이 제대로 되지 않아 검찰의 ‘제식구 감싸기’가 여전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한성 전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의원이 2015년 국정감사 때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5년 6월까지 형사피고인·참고인이 독직폭행·가혹행위로 고소·고발한 사건은 4489건에 달했지만 실제 기소는 6건에 그쳤다. 기소율이 0.13%에 불과했다.
경찰 수사도 마찬가지다. 박완수 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 8월까지 독직폭행으로 징계를 받은 경찰관은 총 15명에 그쳤다. 이들은 감봉(8명), 견책(7명) 등 경징계 처분을 받았다.
문제가 거듭되자 문재인 정부는 2017년 8월 검찰에 인권감독관 제도를 도입하고 2021년 4월에는 인권보호관으로 확대 시행했다. 인권보호관은 불구속 수사 원칙이 이행되는지, 각 수사 단계에서 위법한 인권침해 요소가 없었는지 점검하는 자리다. 현재 법무부는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일 당시 검언유착 사건 갈등으로 폐지됐던 대검찰청 인권부 복원을 추진 중이다.
전문가들은 헌법 제27조 4항에 규정된 무죄추정의 원칙이 간과되는 등 법과 현실 간 간극이 여전하다며 수사기관의 인권 감수성을 높일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을 지낸 조현욱 변호사는 “과학적 증거를 토대로 수사를 해야 하는데 수사기관이 무리하게 강압적 수사를 하고 무죄추정 원칙을 가볍게 여기고 있다”며 “검사, 수사관의 인권감수성을 키우고 어떤 경우에 독직폭행, 가혹행위에 해당하는지 사례 중심의 예방 교육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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