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바뀌면서 노동 환경도 많이 변했습니다. 제조업 중심에서 서비스·문화 등으로 산업구조가 바뀐 만큼 이에 걸맞게 새로운 노동의 틀이 필요합니다. 노동시장이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 어떻게 바뀌든 그에 적응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김진영 한국노동경제학회장)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후 노동 개혁이 다시 화두로 떠올랐다. 문재인 정부 5년간 노동계에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고 글로벌 산업구조의 대변혁 속에서 경쟁력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노동 전문가들은 윤석열 정부가 국정과제로 제시한 임금과 근로시간 유연성을 넘어 시대적 과제인 고용 시장 유연화라는 과제를 담대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 경제의 성장 엔진을 갉아먹는 노동시장 경직성을 지적한 것이다. 다만 역대 정부의 실패 사례가 보여주듯이 노동 개혁은 결코 만만한 이슈가 아니다. 노동계를 설득하고 국민적 동의를 얻는 사회적 합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20일 경영계 등에 따르면 노동 학계는 노동 유연성 확보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국경제학회가 3월 경제학자 31명을 대상으로 노동 유연성에 대해 설문한 결과 81%가 ‘동의한다’고 답했다. 가장 시급한 분야는 기존 근로자의 이직과 해고의 용이(65%)였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낮추는 요인에 대한 답변으로는 노동조합이 33%로 1위를 차지했다. 정리해고에 대한 규제가 20%로 뒤를 이었다. 노동시장 유연화의 걸림돌로 노조와 정리해고에 대한 규제를 지목한 것이다.
노동 유연성은 임금, 근로시간, 고용 등 세 개 축이 맞물려 돌아간다. 특히 자유로운 해고와 채용을 위한 고용 유연성은 노동 유연성의 핵심이다. 기업이 근로자를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게 하자는 뜻이 아니라 정당한 이유가 있으면 해고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행 노동법은 고용 유연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대기업과 공공이 중심인 강성 노조의 반발이 심했기 때문이다. 역대 정부가 고용 유연성을 핵심으로한 노동 개혁을 추진해보지도 못하고 실패한 가장 큰 이유다.
한국 노조는 노동시장이 제조업 중심이던 1980~1990년대 초 규모를 키웠다. 노동자들의 근로 조건 개선과 더 나은 삶을 위한 요구가 국민들의 공감대를 얻던 시기다. 지금은 시대가 완전히 달라졌다. 우선 산업구조가 대폭 바뀌었고 노동자의 근로 형태나 계약 관계도 복잡다단해졌다. 특수고용노동자 비중이 10%에 육박하고 있다. 그러나 노조는 물론 노조법도 공장 시대 당시에 머문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3법 시행 등 노동계에 기울어진 운동장이 만들어졌다.
노동 전문가들은 노동시장의 구조적인 문제를 우선 개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조 조직률은 지난해 기준 14.2%로 관련 조사 이래 20%선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노조 사업장은 대기업이거나 공공 부문이다. 노조가 있는 대기업과 노조가 없는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 문제가 이 같은 노동시장 이중구조에서 발생한다. ILO 3법 시행 등으로 노조권이 강화되면서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결책은 더 보이지 않게 됐다. 파업과 같은 단체행동권이 크게 확대됐기 때문이다.
경영계는 노조의 단체행동권에 대항할 수 있도록 법 개정과 제도 개선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노조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사용자의 처벌 완화, 노동쟁의 시 사업장 점거 금지 등이 대표 요구 사항이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사 자율로 노사 문제를 해결하려면 노사 간 힘이 대등해야 한다”며 “(경영계가 기업별 노동조합에 대한) 대항권이 필요하다고 요구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노동 전문가들은 특히 정부가 노동 유연성과 사회안전망을 동시에 강화해 대립적 노사 관계를 협력적 노사 관계로 바꾸는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동 유연성이 쉬운 해고보다 쉬운 고용으로 효과를 낼 수 있는 정교한 대책과 사회적 공감대 마련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노동 현장을 획일적이고 경직화하는 노동법제 개선도 정부와 국회가 할 일로 지목된다. 전체 기업 99%에 달하는 중소기업은 현행 제도처럼 시·일·월·연 단위로 근무시간 시스템을 세분화하기 어렵다. 노사 문화를 소수 기득권 노조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업별 노조에서 다수의 이익을 도모하는 초기업별 노조로 바꿔나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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