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254년 전 중국의 아름다운 운하 도시 항저우 근처의 한 마을에 사람들의 영혼을 훔치는 요술사에 대한 소문이 떠돌았다. 이 요술사는 당시 중국 남성들의 헤어스타일인 변발(앞머리를 밀고 나머지 머리를 따서 등 뒤로 늘어뜨리는 방식)을 잘라 그 영혼을 훔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흉흉한 소문은 농민들의 집에서부터 황제가 사는 궁궐까지 퍼져나갔고 사람들은 광기에 빠져들었다.
황제인 건륭제는 요술사가 아니라 백성들의 변발이 잘려 나간 사실이 두려웠다. 변발은 만주족에 대한 복종의 척도인데 변발이 잘렸으니 배후에 만주족에 대한 모반의 무리들이 숨어 있다고 확신했다. 이에 건륭제는 사건 발생 지역 관료들의 나태함을 질책하면서 관련자를 빠짐없이 색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관료 사회는 경직됐고 존재하지도 않는 요술사를 잡아내기 위해 공권력은 평범한 사람들인 스님·도사·거지들을 희생양으로 몰아갔다. 결국 전국을 공포정치로 몰아넣었던 요술사 사건은 해프닝으로 끝나버렸다. 그사이 관료들은 자신들의 이력에 흠이 생기지 않는 데 급급했고 황제는 공포정치를 통해 관료들의 기강을 잡았다. 일시적이나마 태평성세 이면의 어두운 그림자를 감출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1768년 중국을 뒤흔든 공포와 광기의 역사책 ‘영혼을 훔치는 사람들(필립 쿤 지음)’을 다시 펼쳐 읽어본 것은 오늘날 중국 정부의 제로 코로나 정책 및 상하이 봉쇄령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제로 코로나 정책의 본질은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 확산할 것에 대한 두려움에 있는데 이러한 통치자들의 두려움은 1768년에도 큰 차이가 없었다. 필립 쿤 하버드대 교수는 1768년에 대해 “여전히 태평성대로 보이는 시대에 누군가가 흉악한 요술을 부려 미래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고 썼다. 오늘날 상하이 시민들의 고통스러운 목소리를 접하며 1768년 요술사 사건을 떠올리는 것은 필자만의 상상이 아닐 것이다. 조영헌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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