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치(廉恥)란 예의나 품위를 지키고 부끄러움을 아는 것으로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기본 가치를 말한다. 맹자는 이를 인불인지심(人不忍之心), 즉 ‘사람이라면 차마 다른 사람에게 모질게 할 수 없는 마음’의 네 가지 요소, 사단(四端) 중 두 번째인 수오지심(羞惡之心)이라고 불렀다. 수오지심은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할 줄 알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비판할 줄 아는 마음을 가리킨다. 맹자는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무수오지심 비인야·無羞惡之心 非人也)”라고 했고 “수오지심은 의로움의 시작이다(수오지심 의지단야·羞惡之心 義之端也)”라고 해 의로움이 수오지심으로부터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갑자기 옛 성인의 말씀을 거론하는 이유는 이 세상에 왜 이리도 염치없는 사람이 많은지 기가 막혀서다. 한국의 정치권에는 오로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만 모아 놓지 않고서야 어찌 이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사례를 들자면 끝도 한도 없지만 요즘 유행하는 말로 ‘내로남불’이라는 것은 모두 이러한 몰염치한 상황을 가장 적확하게 표현한 것이다. 조국 사태의 본질은 자식의 입시에 활용할 각종 스펙을 쌓기 위해 염치없는 부모가 자행한 문서위조와 이를 감추기 위한 거짓말이었다. 최고 지성이라는 서울대, 그것도 법대의 형법 교수라는 사람이 자식과 집안의 여러 비리를 감추고 고고한 척 해온 것을 정당화하려는 쓸데없는 노력이 사건을 키운 것일 뿐이다. 그것을 이익에 눈먼 정치인과 어용 지식인들이 앞뒤 분간 없이 옹호하면서 집단적 최면 상태로 빠져버린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마찬가지다. 재임 중 전임 대통령과 전 정부 관련 사안에 대해 의혹이 있을 때는 끝까지 추적해 낱낱이 밝히라고 지시하면서 자신이나 자기 편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했다. 자식의 능력이 아무리 출중해도 염치를 아는 사람이라면 정부 지원 사업에 대통령 아들이 지원해 수억 원을 챙기는 일은 하지 못한다. 그러고도 고개를 뻣뻣이 들고 무엇이 잘못됐느냐며 반문하는 만용이라니. 돈은 챙겼지만 더 귀중한 인격과 명예를 잃고서도 여전히 깨닫지 못한다.
윤석열 정부 출범 전에 검수완박을 이뤄야 한다며 설쳐대던 처럼회 소속 국회의원들의 소행은 또 어떤가. 지난해에 약속했던 법사위원장을 여당에 절대 줄 수 없다면서 국회 원 구성을 미루고 있는 민주당도 염치없기는 마찬가지다. 원 구성조차 되지 않아 국무위원 인사청문회는 물론 바람 앞의 등불 같은 경제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꼭 필요한 각종 개혁 법안들은 제출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데도 여름휴가 기간에 국비로 외유를 떠나는 국회의원들은 더 말할 가치조차 없다. 그러고도 입으로는 서민을 위하고 기득권을 내려 놓겠다며 마치 국민을 위하는 척하는 데는 도가 텄다. 솔직히 가증스럽기까지 한 정치인들의 모습에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 이 글을 쓰는 것조차 부끄럽다.
더욱 가관인 것은 여당인 국민의힘 지도부가 보이는 행태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성상납 추문은 의혹만으로도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며 사과를 해도 모자랄 판에 최고위원회 만남에서 악수하는 척하며 외면하는 등 개그콘서트급 추태를 보이고서도 무엇이 잘못됐는지 부끄러움을 모른다. 불과 0.73%포인트 차이의 대선 승리와 이후 20일 만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가까스로 균형을 되찾은 것을 큰 승리로 착각하고 있다. 바람만 불면 흩어질 모래 위에 작은 두꺼비집 하나 지어 놓고 자축하는 꼴이라니 보수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이런 참혹한 상태임에도 여당 지도부는 저만 잘났다고 뻐기고 입을 놀려 대니 참으로 가소로운 일이다.
얼마 전 부친의 세종시 농지 투기 의혹에 의원직까지 서슴없이 던져버린 윤희숙 전 의원을 제외하면 여야를 막론하고 대다수 정치인은 던져버리라는 기득권과 욕심 대신 수오지심을 아예 던져버렸다. 이들에게 언제까지 이 나라를 맡겨야 하는가.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이니 이제는 젊고 참신한 새 정치 세력의 출현을 기대해 본다. 새 정치 세력은 부끄러움을 깨달아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알 것을 기대해 본다(羞惡之心 義之端也). 그래야 최소한 동물은 면할 것이 아니겠는가(非人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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