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대표가 되는 것이 오히려 개인적으로 불리할 수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3일부터 이틀 간 충남 예산 한 리조트에서 열린 당 국회의원 워크숍에서 이처럼 답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당이 어려운 상황이고, 당의 개혁을 바라는 지지자들의 요구에 제가 책임질 부분이 있다”고도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의원은 “당 대표 선거에 나가는 것이 나의 진로에 꼭 유리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손해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당을 위해 내가 출마해야 한다는 당원들의 목소리도 커서 고민이 깊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들리셨습니까.
듣기에 따라서는 당 대표 불출마를 요구하는 의원들에 동의하는 듯 하지만 손해를 보더라도 ‘선당후사’를 위해 출마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워크숍에 참석한 의원들도 의견이 갈렸습니다. 수도권 한 의원은 “이 의원이 ‘0.5선 의원’이라거나 ‘변방에서 온 사람’이란 말로 자신을 낮췄지만 8·28 전당대회에 당 대표 출마 의지가 강하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또 다른 의원은 “면전에서 자신을 향해 ‘출마하지 말라’는 의원들을 보면서 이 의원도 곤혹스러웠을 것”이라며 “당 대표가 되더라도 가시밭길을 예상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의원 입장에선 불출마 요구를 받자니 당혹스럽기도 하고, 또 지지층의 기대에 맞춰야 한다는 고민이 깊어 보입니다.
그래서 ‘민주당 대표’ 이재명 의원의 손익계산서를 한번 뽑아 봤습니다. 그는 손해를 보고, 개인적으로 불리하더라도 당 대표 출마 결심을 굳힐까요. 아니면 득이 많다는 판단에서 당 대표에 나서게 될까요. 분명한 것은 차기 민주당 당 대표 선거에 이재명 의원은 변수가 아닌 상수라는 점입니다.
민주당 차기 당대표에 이재명…변수아닌 상수
사실 이 의원의 당 대표 출마 득실을 따지기는 간단치 않습니다. 당 장악을 통해 ‘이재명의 민주당’을 완성할 수 있고, 2024년 공천권 행사로 친명계 의원으로 당의 진용을 갖춰 2027년 대선의 발판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윤석열 정부의 사정칼날을 제1야당 보호막으로 피할 가능성도 생깁니다. 이렇게 만 보면 당 대표 출마를 마다할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 손익계산서 상 유리한 것 만도 아닙니다.
다음 대선이 5년 가까이 남았다는 자체가 부담입니다. 당장 당 대표 임기 2년 동안 민주당의 입법 성과가 부진할 경우 부진한 성과 그대로 이 의원의 성적표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의원이 가진 사법리스크가 민주당 리스크로 확대될 경우 자기 보호에는 유리해질 수 있지만 중도 확장에는 민주당 전체가 장애를 겪을 수도 있습니다. 2년 후 총선에서 ‘자기 사람’을 중심으로 공천을 하더라도 패배할 경우 대선·지선에 이어 다시 총선 패배 책임까지 질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대선 주도권을 쥐기 보다 당내 대선 경선 통과도 어렵게 될 수 있습니다. 총선 이후 대선까지도 3년이라는 장기 레이스를 펼쳐야 하는 이 의원 입장에서 “개인적으로 불리할 수 있다”는 말은 빈말이 아닙니다.
대선 패배 석달 만에 호명…‘대놓고’ 또는 ‘은근한’기대
시간을 조금 돌려 지선 직전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당시 대선 패배 직후 이 의원이 곧장 등판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결국 “그런데도 (지선에)나왔고 지방선거를 망쳤다” 이재명 당 대표 불가론을 요약하면 결국 “왜 나왔냐”가 골자입니다.
이번에도 당 대표에 출마하면 총선 패배까지도 겪을 수 있으니 나서지 말라는 요청인데 5월 초의 당내 분위기는 사뭇 달랐습니다. 통상적으로 대선에서 승리한 이후 진행되는 전국단위 선거는 여당이 유리합니다. 그런데도 지난 지선은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높지 않자 민주당 역시 ‘해볼 만 하다’는 인식이 컸습니다. 대선에서 0.73%포인트의 석패로 아쉬워 하는 지지층을 결집시키면 대승을 거둘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습니다.
결국 이 의원을 호명한 것은 상황 논리가 크게 작용했습니다. 심지어 이른바 ‘서해벨트’ 에서 선전할 수 있다는 나름의 계산도 제기 됐습니다. 이 의원의 출마 효과를 극대화하며 경기·인천에서 승리하고, 서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여세를 몰며 충남북과 대전·세종, 텃밭인 호남까지 사수하면 과반 승리가 가능하다는 게 민주당의 희망 섞인 관측이었습니다. 실제 초반만 해도 ‘정권안정론과 정권견제론’의 성격이 강했던 지방선거가 이 의원 출마로 ‘이재명이냐 반(反)이재명이냐’싸움으로 바뀌었습니다. 지방선거를 대선 2라운드 변환시키고 특히 낮은 투표율을 기록하는 지선 특성상 민주당과 이 의원 지지층이 대거 결집하면 승산이 있다는 결론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의원의 인천 계양을 출마 한 주 만에 박완주 의원의 성비위 사건이 터지면서 이재명 효과는 말 그대로 ‘순삭(순식간에 삭제)’이 됐습니다. 당 지도부는 전략도 전술도 없이 1600만표를 득표한 ‘이재명’에 기댔다가 효과가 사라지자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3주기 이후 지지층 결집을 기도하는 수준이었습니다.
1600만표 이재명 효과 기댄 지방선거…패배하자 오직 ‘이재명 탓’
흔히 이재명 의원에 대해 일반의 상식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는 평가를 하지만 지난 지방선거 과정을 보자면 꼭 그렇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당시 상황을 돌이켜 보니 어떠신가요. 이 의원의 억지스러운 출마 결심이라고 느껴지시나요. 물론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성남과 경기도가 아닌 인천 계양을에 출마한 데에 따른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현재 당 대표 선거 출마 만큼이나 민주당 내부의 만류와 반대는 크지 않았습니다. 초반 판세에 ‘이재명 등판’이 승산이 있다는 판단을 ‘대놓고’ 또는 ‘은근히’ 했던 게 사실입니다. 현재 당내 반발 처럼 강하게 반대하는 기류였다면 서울시장 공천부터 바로 잡고, 계양을 국회의원은 비우지 않았어야 했습니다.
흔히 선거에서 패배한 뒤 그 이유를 찾자면 100가지 넘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재명 책임론’은 100가지 이유 중에 한 가지입니다. 물론 대선 후보였고 지선을 이끌었던 총괄선대위원장의 책임은 막중합니다. 그 책임에서 이 의원이 자유롭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이 의원이 억지스럽게 일반의 상식과 다른 정치 행보를 했다는 분석은 핵심을 놓치고 있어 보입니다. 앞에 설명대로 지선 등판은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패배 시에 감당해야 할 비난과 책임론 그리고 경기도가 아닌 인천 계양을 출마라는 마이너스 요인에도 민주당 지선 승리 가능성을 더 우위에 두고 등판한 것입니다.
이재명, ‘문재인의 길’ 갈 수 있는 열쇠…‘선당후사’
다시 당 대표 출마의 손익계산서를 계산해보겠습니다. 기준은 똑같습니다. 대선·지선 연속 패배의 장본인이지만 민주당 지지층을 결집하고 당 쇄신과 혁신 그리고 담론을 제시해 2년 후 총선과 대선까지 승리를 이어갈 주역이 될 수 있다면 이 의원은 출마 결심을 굳히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당권을 장악하더라도 총선에서 패배할 경우 당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고 민주당은 다시 비상대책위를 꾸려야 할 겁니다. 이 의원은 대선은 커녕 정치생명도 위태해질 수 있습니다.
당 대표 이후 총선 승리와 대선 승리의 비결이 하나 있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2015년 비판과 비난을 무릅쓰고 당 대표에 올랐지만 총선 공천은 사심 없이 당시 김종인 비대위원장을 세우고 모든 권한을 넘겼습니다. 이후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제1당의 지위에 오르며 대승을 거뒀습니다. 대선에서도 승리했습니다.
이 의원의 결심도 ‘당권장악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오로지 ‘선당후사’일 때 길이 열리지 않을까요. 지금 이재명 당 대표 반대를 부르짖는 당내 인사들에게 총선 공천 시기가 오면 문 전 대통령과 똑같이 비대위를 꾸리고, 공천은 당대표가 할 수 없게 제도화하겠다 선언한다면 ‘이재명 책임론’이 그때에도 제기될까요.
‘문재인의 길’ 생각보다 정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앞으로 이재명 의원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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