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주도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기구의 정체성과 임무를 담은 핵심 문서인 ‘전략개념’에 처음으로 중국을 명시한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러시아는 ‘직접 위협’ 세력으로 규정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주도하에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경계수위가 높아지는 가운데 중국과 러시아는 이란·아르헨티나 등 서방과 거리를 두는 신흥국들을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신흥 경제 5국)에 포섭해 세 불리기로 맞불을 놓고 나섰다. 29일(현지 시간) 개막하는 나토 정상회의를 기점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신냉전 구도가 한층 굳어지는 모양새다.
29~30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에 앞서 27일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새 전략개념에 중국을 처음으로 다룰 것”이라며 “중국이 우리 안보와 이익·가치에 가하는 도전들에 대해서도 다룰 것”이라고 밝혔다. 전략개념은 나토의 정치적·군사적 임무를 담고 있는 문서로 약 10년마다 정기적으로 재검토된다. 마지막으로 채택된 것은 2010년이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나토 회원국 사이에서는 중국을 어떻게 표현할지를 두고 논쟁이 일고 있다. 한 백악관 관계자는 “전략개념에 중국에 대한 강경한 표현이 담길 것으로 자신한다”면서도 “나토 정상회의를 앞두고 협의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과 영국이 중국의 커지는 군사적 위협과 대만 침공 가능성 등을 감안해 중국에 대한 강경한 표현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프랑스와 독일은 유럽 산업계의 중국 내 사업 여파 등을 고려해 신중한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외교관은 “중국을 ‘구조적 도전(systemic challenge)’으로 표현하는 대신 ‘공동의 이해가 있는 영역에서는 함께 일할 의사가 있다’는 표현을 병기해 톤을 조절하는 쪽으로 타협 안이 다듬어지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나토는 북대서양을 둘러싼 나라들의 집단방위를 위해 출범했지만 최근에는 아시아와 북유럽에서도 영향력을 확대하며 중국과 러시아를 정조준하고 있다. 이번 정상회의에 한국과 일본·호주·뉴질랜드 등 비회원국을 사상 처음으로 초청한 데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세력 확장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미국 관료는 “나토의 전략개념에 중국을 포함시킨 것은 중국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유럽의 한 관료 역시 “나토는 중국을 무시할 만큼 여유롭지 않다”고 현 상황을 설명했다.
나토는 또 새 전략개념에서 러시아에 대한 표현도 ‘전략적 파트너’에서 ‘직접 위협’으로 바꿀 것으로 보인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이날 “우리 동맹국들이 러시아가 우리의 안보와 가치, 규칙에 기반한 국제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힐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나토는 러시아의 위협에 대응해 신속 대응군을 현재의 4만 명에서 30만 명 이상으로 늘리기로 했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냉전 이래 우리의 집단적 억지력과 방위에서 최대 규모의 정비”라고 평가했다. 나토는 현재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핀란드나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의 나토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나토를 비롯한 서방 및 미국 동맹국들의 포위망이 좁혀들자 중국과 러시아는 브릭스를 통한 우군 확보에 나섰다. 이날 로이터에 따르면 사이드 하티브자데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최근 브릭스 가입 신청서를 제출했다”며 “브릭스 가입이 양측 모두에 더 유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방과 긴장 관계에 있는 이란이 미국 주도의 국제 질서에 대항하기 위해 중러와 세력 결집에 나서는 모양새다. 앞서 이란을 방문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에게 “서방 국가들의 기분과 변덕에 영향받지 않는 독자적인 경제 관계를 구축하고 미국과 서방의 제재와 맞서기 위해 양국이 에너지·무역 분야에서 협력을 증진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아르헨티나도 브릭스 가입을 신청했다고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이 이날 밝혔다. 26일부터 독일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도 초청된 아르헨티나는 앞서 열린 브릭스 회의에서 브릭스 가입 의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인도네시아·터키·사우디아라비아·이집트 등이 브릭스에 참여 의사를 보이고 있다고 중국 측 담당자는 전했다.
이런 가운데 크렘린궁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할 것이라고 이날 발표해 서방에서 고립된 러시아가 우군 확보를 위해 다자협의체인 G20에서 광폭 외교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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