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말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이 기조연설을 통해 “자유는 자유무역보다 더 중요하다”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졌다. 그는 “경제적 이익을 위해 자유와 민주주의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면서 “우리의 가치 보호는 경제적 이익보다 더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 자유와 민주주의, 세계 평화, 인권 등 인류 보편 가치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야만적 행태에 맞서 서방 진영의 단결을 촉구한 것이다. 현지 언론들은 그의 연설이 포럼에 참여한 2500여 명의 정치가와 고위 관료, 기업가들로부터 큰 공감을 얻었다고 전했다.
세계는 경제와 안보가 분리되지 않는 경제안보의 시대를 맞고 있다. 안보가 흔들리면 나라의 존망이 위태롭고 경제적 이익을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안보와 주권, 자유민주주의 등 소중한 가치를 다시금 일깨워줬다. 스스로 지킬 의지와 동맹이 없으면 어떤 국가도 존립이 불가능하다는 당연한 전제에 대한 재확인이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고 있는 나토 정상회의에서도 각국은 자유민주주의에 기반한 가치 연대와 규범을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자유를 향한 리투아니아의 선택은 주목할 만하다. 1989년 8월 옛 소련 치하에 있던 리투아니아 국민들은 라트비아·에스토니아 국민들과 손을 맞잡고 인간 사슬을 만들어 ‘자유를 달라’고 외쳤다. 세계인들의 심금을 울린 ‘발트의 길(Baltic Way)’ 캠페인이다. 자국 영토를 경유하는 러시아의 화물 열차를 멈춰 세우고, 대만 대표처를 개설해 ‘하나의 중국’을 거부한 나라가 리투아니아다. 인구 280만 명에 불과한 소국의 강단이 놀라울 따름이다.
반면 스리랑카는 중국이 쳐 놓은 원조의 덫에 빠져 국가 부도에 몰렸다. 스리랑카 정부는 5월 채권 이자 7800만 달러를 갚지 못해 채무불이행을 선언했다. 중국에서 빌린 돈은 전체 국가 부채의 22%(11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스리랑카는 2017년 중국 빚을 갚지 못해 남부 최대 해안 도시인 함반토타 항구의 운영권을 99년간 중국에 넘겨야 했다.
자유민주주의와 권위주의 간의 네트워크 전쟁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자유 세계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와 4개국 연합체인 쿼드(QUAD), 오커스(AUKUS), 나토 등을 통해 러시아와 중국의 도전에 공동 대응하고 있다. 나토 정상회의에서는 ‘중국의 위협’을 처음으로 명시하는 새로운 전략 개념까지 등장했다. 이제는 어느 한쪽의 네트워크에 참여하지 않으면 국제 무역 질서를 이용하는 것마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과거처럼 미국이 깔아 놓은 네트워크에 무임 승차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봐야 한다. 무역이나 투자로 적성국이 부강하게 되면 그중의 일부가 군사력 증강에 투입되고 이는 자국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이 “러시아와 경제협력을 강화하면 평화가 올 것이라는 생각은 단꿈이었고, 독일은 러시아 에너지에 종속되는 상황이 됐다”면서 푸틴의 덫에 빠졌다고 개탄했던 것이 단적인 예다.
작금의 신냉전 시대는 세계 각국에 어려운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한국도 미국 편에 설 것이냐 중국 편에 설 것이냐의 기로에 서게 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식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35차례나 언급하며 ‘자유 가치의 재발견’을 촉구했다. 한국은 이제라도 자유민주국가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다잡으면서 민주주의와 주권, 인권 등 핵심 가치를 공유하는 서방 국가들과의 확고한 연대 의지를 밝혀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주요 10개국(G10)에 걸맞은 국익 외교를 당당히 펼쳐 국제 무대에서 대한민국의 존재감을 확보해야 한다. 자유에 기반한 글로벌 가치 동맹이야말로 안보·경제 강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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