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과 긴축의 후폭풍이 소비에 직격탄을 날리기 시작했다. 통계청의 5월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생산·설비투자는 늘었지만 소비는 0.1% 줄며 2020년 3월 이후 처음 석 달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코로나19 진정에 따른 의약품 감소도 영향을 줬지만 ‘R(경기 침체)의 악순환’이 시작되는 전조일 가능성이 높다. 실물 현장의 소매 부진 속도는 훨씬 빠르다. 당장 기업 재고가 급증세다. 2분기 가전 양판점 판매는 눈에 띄게 줄었고 가전·철강 등은 재고 누적으로 가격을 낮추고 있다. 일본 닛케이에 따르면 세계 2349개 제조 업체의 3월 말 재고는 1조 8696억 달러로 전년 말보다 970억 달러 증가하며 10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기업 체감 경기는 벌써 한겨울로 접어들었다. 한국은행의 6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한 달 새 4포인트 떨어진 82로 곤두박질쳤다.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한 전국경제인연합회의 하반기 국내 투자 계획 조사에서는 ‘줄일 것(26%)’이라는 답변이 ‘늘릴 것(16%)’보다 많았다. 한 달 전 대기업들이 윤석열 정부 임기 내 1000조 원 넘게 투자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위기가 닥치자 몸을 잔뜩 움츠린 것이다. 이달 기준금리가 한꺼번에 0.5%포인트 올라가면 긴축발(發) 소비·투자 위축은 더욱 심해지고 자산 시장 수축도 빨라질 것이다.
정부의 위기 대응은 더 힘들어졌다. 물가 억제가 급선무이지만 ‘돈 들이지 않고’ 경기 추락을 막을 정교한 정책 조합이 절실하다. 가계의 지갑과 기업의 곳간을 열게 하는 세제·규제 완화 정책을 더 늦춰서는 안 된다. 근시안 처방이라는 비판을 받더라도 쿠폰제 등 소비를 촉진할 수 있는 미시·거시 가용 수단을 총동원해야 한다. 하반기 경제운용방향의 틀이 정해졌지만 과거 위기 때 동원했던 정책 효과를 점검해 추가 방책을 만들 필요가 있다. 쓰나미처럼 몰려드는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우리 경제가 글로벌 정글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하지만 체계적으로 대처한다면 경제 체질을 바꾸는 ‘보약’이 될 수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