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바로티’ 김호중이 더 깊이 있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인생에서 가장 주목받는 시기 갑작스럽게 입대했던 그는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경험을 했다. 마음을 채울 수 있는 시간들을 보내며 여유로워졌고, 고스란히 팬들에게 보답할 일만 생각하고 있다. 김호중의 꿈은 지금부터 다시 시작된다.
김호중은 지난달 28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1년 9개월간의 대체 복무를 마치고 소집해제한 지 19일 만이다. 복귀하자마자 여러 일정을 소화한 그는 아직 장애인 복지관에서 복무한 시간들에 여운이 남은 모습이었다.
“생각보다 너무 정이 많이 들었어요. 정을 좀 떼느라 애먹었죠. 제가 군대를 늦게 갔잖아요. 살면서 나름대로 힘들면 힘든 시기, 좋으면 좋은 시기를 거쳤다고 생각했는데 그 복지관에는 발달장애 친구들이 있더라고요. 몸은 성인이지만 지능은 멈춰있는 친구들이죠. 그들을 통해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들을 느꼈어요.”
처음 복지관에서 근무한 3~4개월은 여러모로 힘들었다. 발달장애인들을 대해 본 적이 없어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안전상 주의 관찰을 하는 임무를 맡았는데, 키도 훨씬 크고 덩치 있는 친구들이라 쉽지 않았다. 순수한 얼굴로 ‘선생님 사랑해요’라고 하며 손을 내밀 때는 사르르 녹았다.
“‘내가 이렇게 쓰임 받을 수 있는 사람이구나’ 라는 걸 그 안에서 많이 느꼈어요. 그 친구들과의 에피소드들이 제가 살면서 누군가를 바라볼 때의 마음가짐이나 정신 교육을 해주는 것 같았죠. 음악 할 때도 분명히 이 시간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미스터트롯’으로 최전성기를 맞은 때 입대를 하면서 걱정이 많았다. 코로나19도 심한 시기라 팬들과 제대로 된 소통도 하지 못하고 떠나 아쉬움이 있었다. 대신 공백기 동안 팬들을 즐겁게 해 줄 거리를 최대한 많이 남겨놓고 가려고 했다.
“다행히 클래식 앨범 녹음을 끝내 놓은 상황이고 방송 녹화분도 있었어요. 제가 전달해 드리고 싶었던 메시지가 잘 전달됐었고요. 걱정 아닌 걱정도 했었는데 정말 감사하게도 다녀오고 나서 팬카페 수가 더 늘었더라고요. 어떠한 이유로 그렇게 된 지 모르겠지만 많은 위안을 받고 소집해제를 했습니다.”(웃음)
늘 든든하게 옆을 지켜주는 보랏빛 물결, 아리스(팬덤명)는 에너지의 원천이다. 누굴 만나더라도 김호중에 대해 자랑하고 입소문 내주는 걸 보며 큰 힘을 얻는다. 아리스 덕분에 학창 시절을 보낸 경북 김천시에 있는 ‘김호중 소리길’이 최근 추가 조성되기도 했다. 그곳은 거리 펜스부터 버스 승강장, 공중전화 부스 등이 모두 김호중 팬덤의 상징색인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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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는 정말 좋은 일이에요. 팬들이 그곳에 갔을 때 쉴 수 있는 공간이 더 많아지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생겼잖아요. 점점 더 확장되면 좋겠어요. 얼마 전에 제대로 가서 하나하나 끝까지 봤거든요. 팬들이 제게 쓴 편지가 전달되는 것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말 끝나기 무섭게 우체통을 설치해 주셨더라고요. 보도블록도 다 보랏빛이고 벤치 하나에도 제 생일이나 소집해제 날을 새겨 놨어요. 흐뭇하게 봤습니다.”
긴 무명 시절을 지나 존재 자체로 브랜드가 된 가수가 된 건 복이라고 생각한다. 대중 앞에 서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인기가 있을 때도 있고 조용할 때도 있지만 이제 뭘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아는 시기가 됐다.
“제 음악이 끝날 때까지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무명 때는) 명확하게 잘 모르고 확신이 없었거든요. ‘다른 일을 해야 하나’ ‘이게 맞는 건가’ 싶었지만 제 작품이 점점 더 알려지게 됐고, 전 노래하는 사람이니까 죽을 때까지 이 노래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게 가슴속에 새겨졌어요.”
최전성기였던 입대 전에도 고민은 있었다. 의지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원했던 음악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고 싶었던 것과는 방향성이 달랐다. 대체 복무를 하면서 하고 싶은 음악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이후 어떤 음악을 해야 할지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소집 해제 후 발표한 곡 ‘빛이 나는 사람’은 포크 음악이다. 새로운 도전의 첫 발걸음이다.
“(제가 좋아하는) 김광석 선생님처럼 편안하게 기타를 치다가 주변의 도움을 받다 보니 곡이 나왔어요. 원래 숨겨 놓고 콘서트 때만 부르는 노래로 남겨두려고 했었거든요. 그런데 팬카페에 정말 좋은 글들이 많아서 이 곡이 나오게 됐어요. 제목도 팬들이 써준 내용을 토대로 한 거예요. 팬들이 ‘호중 씨는 빛이 나는 사람입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를 빛나게 해주는 사람이에요’라는 글을 써줘요. 전 팬들도 빛이 나는 사람이기 때문에 누군가를 비춰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글을 나열해서 재밌는 이벤트를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 번째 발걸음은 전공 분야인 클래식이다. 지난달 26일에는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세계 3대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와 듀엣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김호중은 “말도 안 되는 것”이라며 “내가 파바로티 때문에 노래를 시작한 뒤, 성악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본 얼굴들이 ‘3대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다. 3대 테너 중의 하나를 만나서 같이 노래를 한다는 자체가 와닿지 않고 믿을 수 없었다”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본 공연이 다 끝나고 나서 선생님, 사모님 그리고 선생님과 30~40년 함께한 팀이 만찬 자리를 가졌어요. 그때 선생님과 사모님이 한국 팬들에게 굉장히 놀랐다고 하더라고요. 마지막 곡이 ‘물망초, 날 잊지 말아요’였는데 관객들이 이탈리아어로 떼창을 했거든요. 거기에 굉장히 놀라셨어요.”
“도밍고 선생님이 용기를 주시더라고요.‘호중아. 너는 오페라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또 제가 만 나이로 30살이다 보니 ‘오페라 공부도 3~4가지 정도 익히면 좋다. 너와 재미난 일들이 많지 않을까’라고 하셨어요. 바로 앞에서 이야기하는 데도 ‘이 목소리가 도밍고 선생님이 맞나’ 싶게 정말 행복했었죠. 대가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자체만으로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웃음)([인터뷰②]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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